96년부터 SBS와 ‘기아체험 24시간’이라는 ARS(전화자동응답) 모금을 하고 있는 자선단체‘월드비전’은 작년 초 행자부에서 공문을 받았다. ‘행자부 사전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한국통신에서 ARS 회선을 빌릴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및 제3세계 어린이와 국내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4년째 해 온 행사에 느닷없이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99년 모금액은 12억원. 월드비전 관계자는 “행자부가 돌연 ‘법대로 하자’고 나서, 허가를 얻으려고 행자부와 복지부, 외교부 등을 쫓아다니는 데 세 달을 허비했다”고 말했다. 99년 상반기 행자부의 ARS 모금 신규허가를 받은 단체는 한 곳도 없다. 까다로운 법규정 때문이었다.

한국복지재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등 국내 87개 민간단체는 지난해 10월 ‘기부금품모집 규제법 폐지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김범수(김범수·47) 교수는 “‘모금경비를 전체 모금액의 2%로 제한한다’는 조항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모금액의 20%수준이 적정 모금경비로 인정받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흥윤(전흥윤·42) 모금팀장은 “현행법에 따르면 모금 단체 대부분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조세감면 등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은 기부금을 내면 소득의 10%까지 손비로 인정, 세금 공제 혜택을 받는다. 일본은 개인의 경우 최고 25%까지 공제를 해준다. 이에 반해 우리는 기업과 개인 똑같이 소득(이익)의 5%까지만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원윤희(원윤희·43) 교수는 “선진국에서 소득공제는 분명히 기부행위의 주요한 동기 중 하나”라며 “특히 부유층일수록 조세제도가 기부의 인센티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부자들이 자신이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 수 있는 기금운용의 ‘투명성’은 기부문화 정착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 때 감사원은 11개 사회복지법인이 90억3000만원을 법인대표의 생활비 등으로 불법 지출한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했다.

전국재해대책협의회, 공동모금회, 한국선명회 등 일부 기구를 제외하고는 예산집행 내역을 외부에 공개하는 자선단체가 거의 없다. 후원자가 72만명에 이르는 음성 꽃동네 등 종교를 배경으로 한 단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진철주(진철주·46) 기획연구실장은 “모금에 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대신, 모금단체에 관한 정부의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일현기자 ihjang@chosun.com

/김수혜기자 s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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