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 참사 목격자들이 전하는 실태


◇북한의 용천역 폭발참사로 크게 파손된 인근 가옥들 앞에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 사진은 지난 25일 세계식량계획(WFP)에 의해 촬영됐다./연합

“진통제조차 없어 고통에 울부짖는 어린이들이 안타까워 못 보겠어요.”

지난주 말 통제됐던 압록강 철교의 민간인 통행이 26일 재개되면서 북한 쪽에서 나온 화교와 조선족, 북한인 무역상들로부터 용천 참사 현장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절대부족한 의료품과 열악한 의료시설 때문에 부상자들은 대책 없이 누워 있는 상태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촌’과 다름없는 폐허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 처참한 병원 현장 =25일 신의주의 병원들을 둘러본 토니 밴버리 세계식량기구(WFP) 아시아국장은 27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안도 인민병원에는 많은 어린이가 한 쪽 눈 또는 두 쪽 눈을 모두 실명한 상태에서 병상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현지에 식수오염과 전염병 발생 가능성이 적지만 앞으로 불편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면 전염병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5일 360여명이었던 인민병원 입원자가 27일 200여명으로 줄었다는 소식을 국제적십자연맹 신의주 구호센터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단둥에서 만난 북한 소식통은 “유리파편 자국으로 누더기가 된 아이들도 많고, 화상을 입었지만 붕대와 화상치료제가 없어 아픔에 울부짖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한 조선족은 “한약방에 갔더니 거기에도 여러 명의 부상자들이 수용돼 있었다”며 “대부분 환자들의 얼굴 피부가 벗겨진 상태였으며, 특히 어린이들은 눈을 붕대로 가린 채 울고 있었다”고 전했다.

◆ 난민촌 같은 용천 =중국 참고소식(參考消息)지는 27일 용천 현지의 참혹한 모습을 전했다. 북한 당국의 취재 허가를 받아 현장에 들어간 참고소식 기자들은 용천 전방 5㎞ 지점부터 건물 지붕에 거대한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폭발시 발생한 강력한 기류 때문에 깨진 기와들이 물결무늬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열차역에서 500m나 떨어진 영생탑(永生塔)광장 동쪽의 건물들은 거의 예외없이 유리창들이 부서져 있었고 광장 서쪽의 단층집들은 원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단둥의 소식통들은 사고 6일째인 27일까지도 폭발사고 지점 주변만 복구가 됐을 뿐 주택가 밀집지역 등은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지붕이 날아간 집에서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고 전해왔다”면서, “26일에는 종일 비가 내려 추위가 더 심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 식당 종업원은 “날아간 지붕을 친척이 비닐로 이어 막아 간신히 비를 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외곽지역에 30가구 단위로 인민반을 구성해 간이대피소 역할을 맡기고 있으나, 구호물자 부족으로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한 중국인은 “친척집에 이재민들이 몰려들어 난민촌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 단둥(중국)=이광회특파원 santafe@chosun.com
/ 베이징=여시동특파원 sdyeo@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