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류 문명(문명)을 종횡으로 비교 분석해 온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1세기 문명과 문화를 어떻게 전망할까.

파리의 포르트 생쿨르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문화는 늘 변화하면서 살아있는 것”이라며 “21세기는 문화 생산의 개인화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개인들간의 문화 공동체를 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

【파리=박해현기자】

―인터넷과 디지털 문명이 인류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보는가.

“나는 디지털 문명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면서 낙관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 디지털이란 문화 생산자가 되면서 동시에 수용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오늘날 TV는 철저하게 중간 위치에 있다. 혁신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이나 전통 예술 활동처럼 각각 소수의 애호가들에게만 관심있는 분야는 TV에 등장하기 힘들다. 가령 내가 음악을 작곡한다고 해도 TV에 출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내 음악을 발표할 수도 있고, 수많은 매니아들과 소통할 수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은 문화 생산에 절대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디지털은 문화 생산과 소비,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익을 가져다 준다. 디지털의 장점으로 인해 우리는 매스 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지난 30년 동안 TV는 중간 지향적 위치에서 대중을 끌어안아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 매스 미디어는 곧 사라질 것이고, 수천개의 미크로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변화는 곧 문화 생산의 개인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 혁명이라고 본다. ”

―당신이 평소 주장하는 유목민(노마드)적 삶이 인터넷 문명 시대에선 문화적으로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

“우리는 고립되지 않은 노마드(유목민)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의 노마드와 세계 각지의 다른 노마드는 웹 사이트와 디지털 TV 덕분에 서로 자유롭게 연결된다. 그것은 개인주의만은 아니다. 개인주의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다. 가령 내가 한국 화가에 관심이 있다면 나는 웹 사이트를 통해 똑같은 관심사를 가진 100여명과 접속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개인으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적 인류 문화가 형성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

―인터넷 시대의 개막이 미국 문명의 지구촌 지배를 강화하면서 인류 문화의 획일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은 일찍이 '배는 맥도널드로 채우고, 머리는 매킨토시로 채우는 세계'를 '맥 몽드(Mc Monde·몽드는 '세계'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내가 쓴 맥 몽드란 용어는 미국 문명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을 넘어서는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면서 유럽과 캐나다 혹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주변부를 형성하는 서구 진영 전체를 뜻한다. 맥 몽드는 자본과 생산 수단, 통신의 경이적인 집중을 통해 만들어진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에릭손이 인터넷을 수신할 수 있는 휴대 전화를 놓고 서로 협력키로 한 것이 가장 최근의 예다. 맥 몽드의 확산 속에서 허약한 일부 문명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0년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문명이 사라졌다. 앞으로도 생존 언어와 문명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의 언어와 문명은 살아남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문명에 속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 혹은 프랑스와 같은 특정 민족의 시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맥 몽드의 시민이 될 것이다. 정체성 규정은 변화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대만에 갔다 왔다. 대만 주민들은 중국인이면서도 동시에 맥 몽드의 주민이다. 그런데 중국 대륙 주민들은 단지 중국인일 뿐이다. 나는 중국이 장차 맥 몽드에 가입할 것인지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유럽은 일찍부터 복수의 정체성을 갖고있었다. 유럽인들은 민족 구성원이면서도 외국적이다. ”

―전지구적 차원에서 문화 교역을 전개하는 영상음반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이 문화 상업주의를 내세워 진정한 문화 예술을 파괴하고 이윤추구에만 혈안이란 비판은 어떻게 보는가.

“앞으로 문화는 두 개의 모순적 운동이 공존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하나는 집중과 독점적 문화생산이 세계적 차원에서 상업적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문화 제작과 배급, 유통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싼 제작비로 개인과 소집단이 만든 영화가 인터넷을 통해 보급될 것이다. 나는 그 두 경향이 서로 공존할 것으로 본다. 사실 상업주의는 문화에 적대적인 위협이 아니다. 서양 역사를 보면 예술의 르네상스 뒤에는 상인들이 있었다. 예술의 대 시대는 언제나 위대한 경제의 시대였다. 경제 번영과 예술 창조는 모순 관계가 아니다. 미국화와 세계화가 있다면, 그 반대도 있다. 세계화는 경제 뿐만 아니라 자유, 문화 창조 영역에서 무척 긍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작년말 시애틀의 밀레니엄 라운드는 시작 전부터 그 실패가 예견됐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정부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상관없이 각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결정한다. 문화는 더욱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 물론 세계화와 미국화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 비판에 의한 혁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주도 세계화에 대해 미국 지식인들이 가장 비판적이다. 하지만 모순적 공존의 원칙이 제대로 굴러간다면 인류는 경제적 자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개인적 자유도 확장할 것이다. ”

―산업 혁명은 인류에게 예술 혁명도 가져왔다. 산업혁명은 고대 이후 음악 연극 문학 미술 무용 건축 6개로 나뉜 예술 범주에 영화라는 제7의 예술을 추가시켰다. 20세기를 끝내면서 인류는 사진과 만화까지 아우르는 9개의 예술 형태를 소유했다. 그렇다면 21세기 인류는 어떤 형태의 새 예술을 창조할 것인가.

“제7의 예술인 영화는 지난 1만여년 동안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과 인터넷은 아직까지 새 예술 수단을 만들지 않았다. 인터넷은 통신 수단이지 창조 수단은 아니다. 물론 우리는 디지털을 갖고 유희를 즐길 수 있지만 , 그래도 아직은 창조적 표현이란 차원에서 예술은 아니다. 영화와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서양인들은 그것들이 예술적 표현의 수단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디지털 문명도 현재까진 새 형태의 예술은 아니지만, 앞으로 새로운 예술적, 창조적 표현의 지평을 열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새 예술을 섣불리 예견하기는 쉽지 않다. ”

―한국에선 전통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고 있지만, 당신은 평소 한국의 현대 문화에 더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당신이 보는 한국 문화의 특성은 무엇인가.

“한국의 전통 사회를 되돌아보면 획일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10여년전 서울대에서 강연을 했다. 나는 학생들 질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때는 학생이 스승에게 그것도 외국인에게 질문하기를 피했던 시대가 아니었는가. 그보다 훨씬 옛날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한국에는 전통 문화가 있고, 현대적이면서 코스모폴리탄적인 문화가 있다. 프랑스에서 문화는 대중 문화 아니면 창조로서의 문화로 나뉜다.

북한의 경우 체제의 이념을 홍보하기 위한 스펙터클 문화가 있는데, 이는 전통 무용과 문화에 크게 기대고 있다. 북한에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문화적 창조란 없고, 단지 문화의 되풀이만 있을 뿐이다. 북한은 박물관이다. 내게 문화란 살아있는 것, 변화하는 것이다.

만약 문화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날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 영향을 받는 남한보다 훨씬 더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문화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문화는 새로운 것의 창조로 정의된다. 수많은 미술가와 작가들이 창조와 생산에 참여했고, 그 수는 점점 증가해왔다. 문화의 또 다른 측면, 즉 문화 소비의 차원에서도 그 숫자와 시간은 똑같이 증가했다. 21세기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21세기 문화의 역할에 대해 낙관적, 긍정적이다. 문화란 말은 이데올로기적 전투에 맞서 많이 사용된다. 개방을 하면 위협받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문화를 앞세워서 문호를 닫는다. 한국에는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등에서 수많은 창조적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나는 한국의 현대 예술가들이 일본 예술가들보다 더 창조적이라고 본다. 한국은 문화를 외국에 알릴 때 전통문화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동세대 예술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문화 외교를 권하고 싶다. ”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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