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핵 전문가들의 영변 핵 시설 방문(1.6∼10)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핵 억제력' 보유 주장을 부정하면서 한-미-일 3국간 공조를 강화해 북 핵 포기 및 철폐를 압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미 스탠퍼드대학 존 루이스(John Lewis) 교수와 로스알라모스 국립핵연구소 지그프리드 헥커(Sigfried Hecker) 수석연구원(전 소장) 일행에게 "핵 억제력을 보여줬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차례 나온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 선언이 현실화됐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풀이되면서 부시행정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었다.

그러나 미 언론과 부시행정부는 헥커 박사 일행의 방북 의미를 평가절하하면서 북한이 '핵 억제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몰아가고 있다.

우선 미 CNN이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가 열린 21일 "북 핵폭탄 제조 여부 확실한 증거 없다"(No 'convincing evidence' North Korea can build nuclear device)고 보도해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CNN은 헥커 수석연구원이 이날 청문회에 출석, "영변 방문단은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한 부분만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후 미 언론은 헥커씨가 "북한은 그들이 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할 산업적 규모의 능력, 장비, 기술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한 사실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 "북 핵 억제력 보유 증거 불확실"(N. Korean Evidence Called Uncertain)이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싣고 북한이 핵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고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0일 미 방문단의 영변 핵 시설 참관과 관련, "우리의 핵 활동과 관련한 억측보도들과 모호성이 당면한 핵문제 해결에 지장을 주고 있으므로 미국 사람들이 직접 자기 눈으로 현실을 확인할 기회를 주어 투명성을 보장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21-22일 미 상원 청문회와 때맞춰 워싱턴에서 한-미-일 3국간 실무협의를 갖고 핵 전문가들의 영변 방문에도 불구하고 대북접근법에는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미국측 대표인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3국 협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미국 민간대표단의 방북으로 6자회담에 영향을 주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또 부시행정부와 미 언론은 플루토늄 방식의 북 '핵 억제력' 보유 주장을 애써 부인하는 반면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 개발 프로그램' 보유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북한측이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밝힌데 대해 켈리 차관보는 자신이 2002년 10월초 방북했을 때 북한측이 "분명히 시인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북한이 공언하는 플루토늄 방식의 '핵 억제력'은 '증거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면서 북한이 없다고 거듭 밝히는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보유하고 있음을 확신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면서 '북 핵무기 철폐' 입장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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