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내 모란봉 구역 김일성종합대학 근처에는 ‘노동당 3호 청사’로 불리는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서 대남 업무를 맡고 있는 통전부(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등 3개 부서가 모여 있는 곳이다. 통전부는 남한과의 각종 교류·협력사업 등 공개적인 활동을 총괄지휘하는 부서이고 대외연락부는 남한 내의 지하당 구축 등 사실상의 간첩활동을 주도한다. 작전부는 공작요원의 남파를 맡고 있다.

▶노동당의 대남부서가 이렇게 한 건물에 모여 있는 것은 공개적인 활동과 지하공작을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 3호 청사 근무자들은 북한의 최고 엘리트들로 충원되며 김일성대학 출신자들이 많다. 이들은 생필품 배급이나 자녀들의 대학진학 등에서 다른 부서에 비해 월등히 좋은 대우를 받으며 한번 배치받으면 대개 평생 한 분야에서 근무하게 된다.

▶노동당 3호 청사의 최고책임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대남담당 비서다.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사건과 이듬해의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주도한 허봉학과 그의 뒤를 이어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이 자리를 지킨 김중린 등이 대남담당 비서로 유명했다. 하루아침에 농장으로 쫓겨가 돼지를 기르는 등 숙청과 재기를 거듭하다 지금은 근로단체 담당비서로 있는 김중린(79)에 이어 허담 등을 거쳐 92년 김용순이 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김용순도 적잖은 역경을 겪었지만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었다. 84년 노동당 국제부장 시절에는 “국제부도 외교부서인 만큼 사교춤을 배워두라”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춤판을 벌였다가 다른 부서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1년6개월간 평남 덕천탄광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때 그에게 구원의 도움을 준 사람이 국제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라는 관측도 있다.

▶어쨌든 10년 넘게 남북교류만이 아니라 지하 간첩활동까지 지휘해왔을 김용순의 죽음에 대해 남한에서도 아쉬움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다. 3년 전 남한에 왔을 때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의 안내를 받았던 그가 이제 남북한 양측에서 ‘민족화해의 공헌자’로 추모받게 됐으니 ‘3호 청사’ 주인치고는 참으로 행복한 삶과 죽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金玄浩논설위원 h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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