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11시 8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의 결승점. 마침내 한 짧은 머리의 청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그는 힘겹게 결승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은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바로 작년 6월29일 서해교전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었던 이희완(27) 대위였다.

이날 열린 ‘국방일보 전우 마라톤 대회’ 5㎞ 코스에서 그는 마지막 주자가 됐다. 기록은 1시간 6초. 결승점에서 기다리던 200여명의 시민들은 이 느린 기록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대위는 왼팔을 번쩍 쳐들었고, 숨가쁜 목소리로 “교전 당시 전사했던 6명을 생각하며 살아남은 전우로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45일 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5㎞구간은 일반인이라면 15~20분만에 주파할 수 있는 코스지만,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왼쪽 다리에 뼈 이식 수술을 받은 그에게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한발 내딛을 때마다 왼쪽 종아리의 수술부위가 칼로 베어내는 듯 아파왔고, 통증을 참고 걷다 보면 왼쪽 발에 쥐가 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대위는 포기하지 않았다. 서해교전 참전자 모임인 ‘서해교전 전우회’(회장 이해영 상사) 동료들이 이 대위의 ‘도전’을 도왔다. 이들과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과 도보훈련에 들어갔다. 대회 당일에도 김장남(29) 중사, 전창성(26) 하사, 예비역 해군 병장 권기형(23·한국농업전문학교 2학년)씨 등 서해교전 전우 3명이 그와 함께 뛰었다.

이날 “아프지 않냐,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괜찮습니다, 기분좋습니다”라고 밝게 대답하던 이 대위는 2㎞구간부터 왼쪽 눈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왼쪽 다리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정신력으로 돌파해보겠다”던 그는 300m정도 더 나아가다 잠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통증을 완화시키려고 스프레이를 뿌려도 소용없었다.

이 대위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지팡이 끝에는 서해교전 당시 자신이 걸었던 군번표가 걸려있었다. 잠시 군번표를 어루만지던 그는 다시 일어났다.

남은 구간은 2.5㎞. 결승점까지는 아직 반이나 남은 상태였다. 이 대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턱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숨이 점점 거칠어지던 그는 4㎞구간부터는 고개를 반쯤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서해교전 전우들이 ‘파이팅’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 대위의 머리 속에 고(故)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 중사 등 6명의 전사자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가는 듯 했다. 그는 “나 혼자 뛰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보이지는 않지만 6명의 전우들이 지금 내 곁에서 같이 뛰고 있다”고 말했다.

뒤에서 이 대위를 따라오던 권기형씨는 “우리 부대원들이 서해교전 한 달 전쯤 마지막 구보(驅步)를 한 적이 있었다”며 “오늘이 교전 470일째 되는 날이니까 오늘 마라톤은 500일만의 부대 구보”라고 말했다.

결승점에 들어온 뒤 부대원들과 힘차게 포옹한 이 대위는 “나는 변변찮은 사람이지만 오늘 내 모습이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발의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전사한 동료들 몫까지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울먹거렸다.

이날 1시간동안 이 대위의 속도에 맞춰 함께 5㎞를 달린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33)씨는 “이 대위의 투혼에 크게 감동했다”며 “인간은 누구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 張準城기자 pea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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