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8.15 이산가족상봉 때 남쪽에 사는 딸을 만난 북한 국어학의 거장 류렬(왼쪽) 교수 박사. 그가 육필로 집필한 원고(오른쪽) '향가연구'가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한글날에 맞춰 출간됐다./연합

북한 국어학의 거장 류열(柳烈.85) 박사교수가 집필한 200자 원고지 2200장에 달하는 방대한 「향가연구」가 한글날에 맞춰 9일 남한에서 출간됐다.

원래 이 원고는 지난 97년 8월 육필로 완성됐으나 아쉽게도 북한에서 출간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어국문학 학술전문 출판사인 박이정(대표 박찬익)이 북한 당국과 정식 출판계약을 맺어 기획한 「조선어학전서」(총 65종)의 하나로 포함됨으로써 이번에 남한에서 역사적인 출간을 보게 됐다.

이 총서 중 일부는 「향가연구」처럼 원고 상태로 북한에서 넘겨받은 것도 있다.

총 560쪽에 달하는 류열씨의 이번 「향가연구」는 「향가 및 이두연구」(오쿠라 신페이<小倉進平>.1929) 이후 「조선고가연구」(양주동.1942), 「향가해석」(홍기문.1956), 「향가연구」(정렬모.1965)를 잇는 또 하나의 중대한 업적이 될 전망이다.

원고를 중시하기 위해 북한 표기법을 그대로 따른 이번 연구서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신라 향가 14수와 고려초 승려 균여에 대한 전기인 「균여전」에 보이는 향가 11수 외에 향가 형식을 답습하고 있는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悼 二將歌)를 포함해 모두 26수에 대한 해독을 시도했다.

나아가 류씨는 '향가'(鄕歌)라는 용어 자체를 '사나노래'에 대한 후대의 한자 표기로 보면서, '사나노래'가 신라 당대 발음이며, 그 뜻은 '동쪽' 혹은 '신라의 노래'로 보았다.

또한 류씨는 향가의 표기법은 기본적으로 이두 체계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뇌가 26편은 다 리두식의 서사체계를 기본으로 하고 특수한 경우에 한문투를 섞어서 기록했다. 그리하여 그러한 서사체계를 크게 '리두서사체계'로 이름지었다"고 했다.

이어 "리두가 한 계단 발전된 형태로 사뇌가(향가)에 쓰이였다고 하여 사뇌가에 쓰인 서사체계를 '사뇌글', '향가의 글'의 글체계란 의미에서 '향찰'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향가 해독과 관련해서 류씨는 신라 당대어에는 이중모음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겹모음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국 한자음에서 첫 소리 'ㅈ'은 흔히 'ㄷ'이나 'ㅅ'으로 쓰였다고 주장한다.

류열씨는 2000년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남한에 살고 있는 딸을 해후한 자리에서 갓 태어난 외증손녀에게 '임여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가 하면 동갑내기인 한글학자 허웅씨와 만나기도 했다.

1983년 북한에서 출간된 그의 「세나라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는 삼국시대 지명과 인명 등의 고유명사를 이두로 풀이한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2만5천원.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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