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敦
/중앙대 법학과 교수

1995년 11월 미국 정부는 반세기 동안 1급 비밀로 취급돼 왔던 ‘베노나 프로젝트’ 문서를 공개했다. 베노나 프로젝트는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그 전신인 육군 무선정보국이 1943년부터 소련의 암호교신을 해독한 특급기밀 작전이었다.

이 문서는 1940년대~1950년대 초 미국 정부 안에 소련 간첩이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들 간첩에 힘입어 소련은 독일이 조기에 항복하는 것을 막아 동유럽을 장악했고, 미국의 원자탄 기밀을 훔쳐 재빨리 핵무장을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6·25 남침을 감행했음이 분명해졌다.

베노나 문서는 1940년대 말에서 1950년 초 사이 간첩혐의를 받았던 로젠버그 부부, 앨저 히스, 해리 화이트가 모두 소련 간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로젠버그 부부는 원자탄 기밀을 소련에 건네준 혐의로 사형을 당했고,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재무부 고위관료를 지낸 화이트는 의회 증언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국무부 고위관료를 지낸 히스는 단지 위증죄로 복역했으나 출옥 후 죽을 때까지 자기는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과연 이들이 간첩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들이 간첩이었음을 알고 있었으나 베노나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정보를 비밀로 부쳤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미국 내 진보파 내지는 좌파 지식인들이 로젠버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으며, 히스는 매카시즘의 희생자라고 지난 50년 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화이트와 히스가 동부의 명문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여론 주도층 사이에도 이들을 두둔하는 경향이 있었다.

베노나 문서는 소련이 미국의 여론 주도층에 침투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 당시 영향력 있던 언론인 월터 리프먼의 비서도 소련의 간첩이었다. 히스나 화이트처럼 정부 고위직에 직접 침투하는 것 못지않게 여론을 움직이는 것 역시 중요함을 소련은 간파하고 있었다.

히스와 로젠버그 부부를 옹호하는 운동도 소련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음을 베노나 문서는 말하고 있다. 소련은 간첩과 그 동조자들을 여론 주도층에 심어 바람을 일으켰고, 그러자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교수와 기자들이 간첩을 옹호하는 책과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련의 선전이 마치 사실인 양 통용돼 왔던 셈이다.

사정은 독일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련과 동구가 붕괴되고 난 후 공개된 기밀문서는 서독의 평화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배후에 동독 첩보기관 슈타지의 공작이 있었음을 밝혀 주었다.

‘평화를 위한 장성들의 모임’이란 좌파 단체를 이끌면서 레이건 대통령의 대소(對蘇) 강경정책을 비난하는 데 앞장섰던 거트 바스티안은 슈타지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그는 1992년 10월 연인이던 녹색당 당수 페트라 켈리와 함께 동반자살했다. 동독은 체제유지를 위해 서독 좌파를 상대로 최후까지 공작을 폈던 것이다.

소련과 동독의 간첩이었거나 이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쓴 좌파들은 마치 그들만이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지식인이요, 행동하는 양심인 양 행세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이 보수세력 때문인 것같이 선전해댔다.

하지만 좌파의 정신적 고향이던 소련과 동구는 1990년대 들어 도미노같이 허물어졌다. 소련을 ‘악(惡)의 제국’으로 불렀던 레이건이 결국 승리한 것이다. 게다가 중국마저 개방의 길을 가고 있으니 누구 말대로 골수 좌파들이 기댈 곳이라곤 이제는 북한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냉전시대의 기밀 문서들이 햇빛을 보면서 조국을 배반한 자들의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사법처리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송두율씨를 감싸는 사람들은 베노나 문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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