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은 1983년 9월 1일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KAL 007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지 만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승객과 승무원 269명이 비명에 갔지만, 이 사건은 지금까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KAL기에 미사일을 발사, 격추시켰던 당시 소련 공군 전투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와 가족들은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와 미국, 일본 정부가 이제 비밀 정보를 해제해 유가족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 지역에서 마을 가스관 도입 등 건축 문제를 걱정하며 초라하게 살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랐다.

아직도 사고 며칠 만에 야반도주하듯 근무지 사할린을 떠나와야 했던 당시의 악몽 등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재산을 하루 새 다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떠나야 했던 당시는 모든 게 비밀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여객기가 정상 항로를 무려 600마일이나 벗어난 것은 조종사는 물론 지상관제소 역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어이없는 실수”라며, “누가 생각해 보더라도 이는 정상적인 경우는 분명히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시포비치는 격추된 KAL기가 여객기나 화물기에 부착되는 점멸등을 깜빡인 채 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육안으로 분명히 확인했다고 했다. 그리고 소련 공군 관제소측과 무선교신에서 이 사실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관제소측이 “점멸등이 깜빡이고 있냐”고 물었고,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과 소련당국은 당시 KAL기가 여객기를 개조한 정찰기로 확신했다고 했다. 당시는 소련과 미국, 일본 정찰기들이 태평양 상공에서 수시로 상대국 영공을 침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일 출동 명령을 받고서도 상대 첩보기를 감시하라는 임무인 줄 알고 비행에 나섰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국제 여론이 소련 공군이 민간 여객기를 격추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상황은 하루 만에 급전 직하했죠. 여객기를 격추하고 착륙하자 사할린 공군비행장에 사령관은 물론 동료 전체가 도열해 나를 환영했던 분위기는 오간 데 없었어요.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정보 당국자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소련 당국은 점명등을 켜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인에 나섰고, 관제소측과 내가 주고 받았던 무선교신 내용까지 새로 녹음하는 등 진실을 은폐했어요. 방송과 인터뷰에서도 당국이 적어준 원고 그대로 읽어내려야 했죠.”

오시포비치씨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살해범으로 전락해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소련측이 정당한 이유였다면 이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한 자신만이 심한 정신적인 충격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냉전 체제가 무너졌고, 러시아가 민주주의 국가로 체제를 변화시킨 만큼, 적극적으로 사건 진실을 파헤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똑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여객기가 분명했나” “승객들을 보지 않았나”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똑같다고 했다. “여객기는 맞았다.” 그러나 당시는 첩보전이 치열해 여객기를 첩보기로 개조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고, 또 여객기 창을 통해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답했다.

당시 정황으로 보면 충분히 사할린 공항으로 유도 착륙이 가능했는데도 격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 태평양 상공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전개했던 소련(현 러시아), 미국, 일본 당국은 이제 침묵을 깨야 할 때가 아닐까.

사건의 진실을 밝혀 희생자들의 비통한 원한을 풀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국정부는 3개국에 적어도 정보공개라도 요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스크바=鄭昺善특파원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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