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 수립 55주년은 '김정일 시대 2기'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시대 2기'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우선 북한이 지난해 단행한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개성공단 건설 및 금강산관광사업, 신의주 행정특구 조성 등 일련의 개혁 및 개방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여부다.

또한 새로 출범하는 `김정일 시대 2기'에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개선될 것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와 북한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지난 3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회의를 통해 김정일-김영남-조명록을 축으로 하는 권력의 틀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하는 한편 경제에 밝은 인물들을 대거 기용한 것은 개혁과 개방에 대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이 추진하는 `우리식 개혁' 및 `우리식 개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며, 북한 주민들의 의식구조 역시 집단의 이익 뿐 아니라 개인의 이익과 `실리'를 함께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뀌고 있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6자회담 직전 8일 간 북한에 머물면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던 김영환 의원(민주당)은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북한 지도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면서 "개혁과 개방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북한실장도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1998년 9월 사회주의헌법 개정 때 이미 정해 졌다"면서 "지난해의 7.1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올 6월의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개발규정과 기업창설 운영 규정 발표는 개혁과 개방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방침이 확고함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에 북한에 경제관리형 내각이 들어선 것은 개혁과 개방을 향한 최고지도부의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노력이 성공을 거두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고 서방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은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실장은 "사회주의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북한 지도부의 개혁과 개방은 '체제 개혁'을 꾀하는 미국에게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라며 "북-미가 새로운 타협점을 마련하기 전까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큰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7.1경제관리개선 조치 등 개혁과 개방 정책이 성공하려면 내부 시스템 효율화 과정이 외부의 우호적 분위기 형성과 맞물려야 한다"면서 "북한은 내부 재원으로 조달하기 어려운 `체제전환 비용'을 외부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달 말 6자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이후 미국도 조금씩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은 북한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 실장은 "6자회담이 잘 마무리되고 북한 체제에 대한 보장이 구체화되면 북한은 상당히 전향적인 개혁개방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발표시기는 모름지기 6자회담 타결 시점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만을 기다리며 개혁과 개방의 행보를 멈추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새로 기용된 박봉주 총리, 김광린 국가계획위원장, 박남기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 등 세 사람은 작년 10월 남한을 방문했던 경제시찰단의 일원이어서 이번 개각은 남북경협 및 외자유치를 위한 개각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우선 새 내각을 중심으로 남북 경제협력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며 이에 맞춰 남한도 적극적인 유인책을 펼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4일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이 개성공단 건설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남북협력기금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대남접근에 호재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당분간 개혁의 상징인 `7.1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개성과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 대남협력사업에 집중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국제사회로의 진출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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