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明哲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오늘 끝난다. 다행히 회담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으며, 참가국간 이견(異見)은 있지만 큰 충돌은 없을 것같다. 북에서 나온 필자로서는 북한 대표단의 행동이 특히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이번에 그간의 미국통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나, 김계관 부상 대신 미국과의 협상 경험이 없는 김영일 외무성 부상을 내보냈다. 김 부상은 “그래 핵 있어 어쩔래”식의 ‘싸움꾼’으로 비쳐지던 강과 김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회담 내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북측 대표단은 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입장을 진지하게 청취하려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보도됐다. 북한이 전에 없이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북한대표의 언행이 유연해 졌다고 해서 마냥 희망적으로만 볼 수 없다. 언행은 유연해 졌다지만, 주장의 내용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6자회담에 바라는 것은 회담에 임하는 북측 사람들의 언행의 유연성이 아니라 핵에 대한 정책과 입장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말과 인상이 변했다고 해서 북한변화를 단정하기에는 과거 북한이 보여 주었고 오늘날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심각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강경한 행동에서 유연한 행동으로 또 한번 미국의 속셈을 시험하는 단계가 아닌지 의문이 든다 . 미국의 입장과 정책이 이미 확실해 질대로 확실해진 마당에 남북관계에서나 통할 듯 싶은 그 짧은 경험으로 너무도 크고 심각한 사안을 해결 해 보려는 것인지 정말 의심이 든다. 사실, 북한 당국에겐 체제보장을 받는 게 주요한 사안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북한체제의 보장과 현재 북한 당국자가 의도하는 것과의 차이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낀다.

북한이 무작정 체제보장을 해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이제부터 우리가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 문화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인권가치를 받아들이기 위해 행동하려고 하니 우리 체제를 보장해 달라’고 하면 모두의 마음을 열 수가 있지 않을까.

국제사회가 보고 있는 지금의 북한체제는 인권이 무시되고 국민은 굶주리고 국제질서에 아랑곳 하지않는 체제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러한 체제를 보호하고 협력하라고 하니 이것은 국제사회에 신념과 양식을 버리라는 것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북한이 회담과 관련, 또 다른 잘못된 인식을 하는 듯 싶다.

지금 북한은 미국정부를 대상하여 문제를 풀어 보려는 집착을 보이는 것 같은데, 사실 북한이 상대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 국민이다.

북한당국자는 미국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 미련을 가지는 듯한 모양인데, 그래서 미국정부를 상대하여 강온행동을 하는 듯한데, 사실 그 권한은 미국 국민이 쥐어 준 것이며 언제든지 다시 회수할 수 있는 유동적인 권한이다.

즉, 미국 국민이 알고 있는 보편적 가치에 맞는 정책과 행동으로 북한이 움직일 때, 미국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가 있고 그 신뢰를 배경으로 하여 대통령이 움직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북한 최고지도자처럼 유연한 말 한마디에 무엇을 선뜻 결정하는 그런 의사 결정 시스템도 아니다. 국제적인 보편적 가치에 충실하려는 의지야말로 북한이 신뢰를 회복하고 체제보장을 받을 수 있는 길임을 아직도 모른 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그 보편적 가치는 미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것이어야 한다. 미국만을 중시한다고 남·북관계나 북·일관계를 훼손한다든가,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한 압력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든가, 이것 모두 북한체제를 보장하는 길이 아님을 확실히 인식하여야 한다.

북한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6자회담에서 큰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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