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석대표인 김영일 외무성 부상은 6자회담 첫날인 27일에 이어 28일에도 전체회의 참석과 별도로 한국·일본·러시아 등과의 양자 접촉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 부상은 27일 오후 전체회의가 끝난 직후 미국측 수석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회담장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서 40여분 양자 접촉을 가졌다.

김 부상과 켈리 차관보는 이 날 오전 전체회의에서 서로 밝힌 각자의 기조연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 부상은 이어 저녁에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마련한 만찬장에서도 켈리 차관보와 나란히 앉아 통역을 뒤에 두고,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김 부상은 만찬이 끝난 뒤 이번엔 한국 수석대표인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와 별도의 접촉을 가졌다. 김 부상은 이 차관보와 30여분 대화를 나눴는데, 그의 관심은 역시 미국측의 입장이었다. 김 부상은 미국측의 기조연설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설명을 요구했고, 이 차관보가 상세히 설명하자 김 부상은 ‘잘 이해할 수 있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김 부상이 이해되지 않았다는 부분은 “미국이 ‘핵을 폐기하면 미·북관계에서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관계개선 의지가 있는가”라는 것이었으며, 이에 이 차관보는 “미국은 확실히 관계개선 의지가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상은 28일에도 한·러와 양자접촉을 갖고, 각국의 입장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 부상은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적대정책 전환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핵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렇지만 김 부상은 작년 10월 켈리 차관보를 상대했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나 김계관 부상, 지난 4월 3자회담 때 대표였던 리근 외무성 부국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강 제1부상은 고농축 우라늄 핵계획을 시인하고 “핵보다도 더한 것도 갖게 돼 있다”며 강력 반발했으며, 리 부국장도 “핵을 보유하고 있고 폐연료봉 재처리도 완료단계”라고 폭탄발언을 했었다.

반면 김 부상은 미국과의 접촉에서는 “농축우라늄 핵계획 같은 것이 없으며, 나머지 핵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일과의 접촉에서도 그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김 부상의 이런 태도에 대해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들은 대체로 “북한이 중·러 등 우호국가들까지 참가한 이번 6자회담에서도 과거처럼 벼랑끝 전술을 사용할 경우 완전한 고립의 위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미국측의 입장을 정확하게 탐색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 北京=權景福기자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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