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반북 시민단체들과 대구 유니버시아드 북한 취재기자들의 충돌 당시 주변엔 경찰 수십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으나 이를 막지 못했다.

자유시민연대, 민주참여네티즌연대,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회원 30여명이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미디어센터(UMC)가 있는 대구전시컨벤션센터(EXCO) 정문 앞 광장에서 반북 시위를 시작한 것은 이날 오후 2시쯤. 이들은 ‘김정일 타도하여 북한 주민 구출하자’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 동포가 산다’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과 U대회 기간 중 북측에만 쏟아지고 있는 편향보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에는 북한 인권운동가인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45)씨도 참여했다.
20분쯤 뒤 미디어센터 앞을 지나던 북한 기자 6~7명이 이 광경을 보게 됐다. 북한 기자 한 명이 시민단체 회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개××들’ ‘이거 치우라’며 거칠게 항의하다 일단 미디어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북한 기자들은 5분 만에 다시 밖으로 나와서는 갑자기 시민단체 회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시 경찰 수십명이 시민단체 회원들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미처 이들을 말리지 못했다.

북한 기자 중 한 명이 폴러첸씨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컨벤션센터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폴러첸씨는 지난 22일 강원도 철원에서 북한에 보낼 라디오를 풍선에 넣어 날려 보내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는 과정에서 목과 다리를 심하게 다쳐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폴러첸씨는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고통을 호소했다.

또 다른 북한 기자 한 명이 플래카드를 뺏는 한편 주먹으로 민간단체 회원인 장형렬(33)씨의 얼굴을 때렸다. 다른 회원들도 북한 기자단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타박상을 입는 등 몸싸움은 20분 동안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한 기자도 인공기 배지가 달린 셔츠가 찢어지고 손가락을 다치는 등 부상하기도 했다. 사태는 뒤늦게 경찰의 제지로 끝났다.

강인구(姜仁求·39) 애국청년단 회원은 “북한 기자들이 폴러첸씨와 장형렬씨를 주먹과 플래카드 각목으로 가격하는 등 일방적으로 무차별 폭행하는데도 경찰은 손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거주 더글러스 신(한국명 신동철·48) 목사는 “북한 기자단들은 인공기 배지나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모두가 무력이 대단한 사람들이어서 우리는 대항할 엄두도 못냈다”고 말했다.

부상한 폴러첸씨와 장형렬씨는 경북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이날 밤 서울로 올라갔다. 폴러첸씨는 충돌 당시의 충격과 고통 탓인지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낯선 사람의 접근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는 기자나 경비원들이 다가갈 때마다 “당신 누구요(Who are you?)?” “저리 가요!(Go away)”라고 말하는 등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신혜식(申惠植·36) 인터넷 독립신문 대표는 “북측이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해야 하며, 정부는 이런 사태를 방관한 것에 대해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을 촉구했다.

신 대표는 남측의 주동자 처벌과 사죄를 요구한 북측의 성명에 대해 “만약 우리 정부가 북한측 요구를 조금이라도 들어주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정권 탄핵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의 한 기자는 “우리 장군님을 저렇게 공개적으로 모독하는 것은 노골적 도발행위이며 공화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 大邱=朴圓秀기자 wspark@chosun.com
/ 成鎭赫기자 jhs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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