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왼쪽)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이 18일 오후 ‘대북송금의혹사건’ 4차 공판을 받기 위해 차례로 서울지방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朱完中기자 wjjoo@chosun.com

대북송금 결심공판

1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대북송금 결심공판은 지난 4일 투신자살한 고(故)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장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가운데 대북송금 행위가 사법처리 대상인지 여부를 놓고 특검팀과 변호인측이 끝까지 설전(舌戰)을 벌였다.

현대측 변호사인 이종왕(李鍾旺) 변호사는 이날 최후 변론에 앞서 ‘정몽헌 회장에 대한 소회(所懷)’를 낭독했다. 이 변호사는 “정 회장은 재벌 회장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남을 원망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며 “최근 파장을 일으킨 정치권 인사의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도 부끄럽게 생각했을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는 말을 남긴 채 그 짐을 혼자 지고 갔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대는 조선·자동차 등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며 국민의 얄팍한 주머니를 탐하지 않았다”며 “개척정신을 이어 받은 정 회장은 대북사업을 통해 갈라진 민족의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장래의 통일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가 정 회장에 대한 소회를 읽어 나가는 동안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으며,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경청했다.

이에 앞서 김 사장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만 혼자 왔습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송 특검과 재판장인 김상균(金庠均) 부장판사도 “얼마전 세상을 타계한 정몽헌 회장에 대하여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정 회장에 대해 애도를 표한 뒤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남북관계의 특성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진행할 수 없었다”며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의 일부 불법 행위가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 “감옥에서 송해가 진행하는 평양 노래자랑을 봤는데 눈물이 났다”며 “남북정상회담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상회담의 가치를 역설했다.

특히 박씨는 “한일회담 당시 김종필·오하라 간의 협상 내용은 60년간 비밀로 묶여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는데 남북정상회담은 3년 만에 모든 게 밝혀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피고인측 변호인들은 이날 “대북송금은 통치행위이므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며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또 변호인들은 “북한은 외국이 아니고 북한 사람은 외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환거래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두환 특검팀은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거진 개별 피고인들의 불법 행위까지 통치행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또 “남북관계는 잠정적인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헌법상 영토 조항과 평화통일에 관한 조항처럼 얼핏 보기에 모순되는 조항들이 공존한다”며 외국환거래법 적용이 위헌이라는 변호인측의 주장을 반박했다./安勇炫기자 justi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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