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

올 가을의 관심은 베이징에서 열릴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6자회담에 집중될 것이다. 이 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발전이다. 한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회담에 참여하는 것은 10년여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잠재적인 의미를 따져볼 때 베이징 회담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이 회담과 병행해 진행될 것이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 구상인데도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다.

PSI 회원국들은 올가을 태평양과 지중해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이전을 막기 위한 수색 및 나포 작전 훈련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PSI는 점차 새로운 국제 규범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서울이 여기서 빠진 것은 편협한 단견(短見) 때문이다.

2003년 5월 부시 대통령이 PSI를 발표하자,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봉쇄를 위한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렸다. 그러나 PSI는 대량살상무기가 테러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막기 위한 대규모의 국제 협력 활동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세관정보를 공유하고 무역검역을 강화하며 군과 해안경비대, 경찰이 공조하는 체제다.

이미 10개국이 여기에 참여하고, 2차례 공식 회의가 열렸다. 물론 PSI 회원국들 사이에도 그 세부사항에는 적잖은 이견들이 있다. 그러나 인신매매 금지나 마약 방지노력처럼 PSI도 대량살상무기 이전을 막는 국제규범으로 자리잡아 갈 것이다.

처음 PSI가 발표됐을 때 대부분의 한국 관리들은 왜 한국이 초청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답은 분명해 보였다. PSI 같은 다자(多者) 안보구상을 출범시키려면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나라들의 참여를 권유하지, 처음부터 물을 타려고 들지 모르는 나라들에 손길을 뻗치지는 않는 법이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지 모르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PSI에 관심이 없을 것으로 간주됐다. 그래서 한국이 처음부터 빠지게 된 것이다.

한국을 그냥 건너뛴 채 다자 차원의 안보구상이 진행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전장(戰場)미사일 방어체제(TMD)’에서 한국은 자신들에게 더 위협적인 것은 북한의 미사일이 아니라 재래식 무기라는 이유로 소극적이었다.

결국 대북 유화정책 때문에 한국은 2개의 새롭고 광범위한 다자 안보 구상에서 빠지게 된 셈이다. 이상한 것은 이 같은 다자안보 구상에 참여하면서도 대북 포용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하면 자동적으로 다자 대화에서 빠지는 것으로 믿는 듯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포용정책이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힘이 뒷받침될 때였다. 만약 포용정책의 뒤에 유약함이 도사리고 있다면 그것은 유화정책에 불과하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회원국이고, 핵의 평화적 이용을 지지하며 테러리즘에 반대하고, 대량살상무기 기술의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이것들이야말로 PSI 회원국들이 공유하는 기본 원칙이다. PSI는 결코 오로지 북한만을 고립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적 운동이 아니다.

PSI의 목표는 비확산이며, 테러리스트의 손에 대량살상무기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훈련과 정보공유 시스템의 구축이다. 노 정부는 이 그룹에 무조건적인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을 불편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단기적 우려 때문에, 모든 문명 국가들이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어길 수 없는 원칙들을 지지하는 데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한국 안에서는 의식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밖에서 볼 때 한국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냉전 이후 서구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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