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50주년을 맞아 휴전선 155마일을 횡단한 6·25 전사자 유가족들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평화통일 기원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臨津閣=金昌鍾기자 cjkim@chosun.com

"아버지!…."
정전(停戰) 50주년을 맞은 27일 오전 9시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 앞.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300명이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버지’를 목놓아 불러댔다. 눈물이 빗물과 섞여 주름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이들은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엉엉 울기만 했다.

"9일만 더 버텼으면 되는데… 왜 가셨습니까. 이렇게 숨져봐야 아무도 몰라주는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로부터 꼭 9일 전인 7월 18일, 백마고지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박복래(朴福來·52)씨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세상에 난 지 두 돌 만에 아버지를 여읜 박씨는 전적비를 어루만지며 내내 서럽게 울었다. 이날 박씨가 타고 온 자동차는 온통 흙투성이었다. 그는 다른 6·25 전사자 유자녀들과 함께 ‘휴전선 155마일 종단’이라는 행사에 참가하고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휴전선 구간에 가장 근접한 차도를 달리면서 전장에서 죽어간 아버지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장 정병욱(53)씨는 "유족 개별로는 휴전선이나 6·25격전지를 찾은 적이 있겠지만 이처럼 함께 모여 행사를 가진 것은 처음"이라며 "정전 50주년을 기념해 그러한 비극이 이 땅에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0시에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한 이들은 진부령, 양구, 화천, 철원 등을 거쳐 경기도 연천, 파주시 임진각까지 차량 60여대에 나눠 타고 500㎞를 13시간 동안 달렸다. 잠 한숨 못 자고 비바람 속에 차를 몰면서 이들은 공포와 어둠 속에서 총을 들고 뛰쳐나가던 아버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1953년 7월 휴전 20일을 앞두고 백마고지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었다는 하재경(58)씨는 "그때 우리 아버지들은 이 길보다 더 험한 길을 맨손으로 넘었을 것"이라면서 "당시 포격(砲擊)으로 시신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무덤에 이름 석자만 남았지만 오늘 따라 아버지가 너무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들 유자녀들은 27일 오후 1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앞에서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결의대회를 가진 뒤, 다시 차에 올라타고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으로 향했다. 이들이 탄 차에는 ‘Yes, Peace!(평화)’, ‘분단에서 화해로’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1950년 10월 전남 화순 전투로 경찰관 아버지를 잃은 강상효(55)씨는 "아버지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건 남에 대한 증오나 원망이 아니다"라며 "나와 다른 사람 자식들 모두 전쟁과 북핵 위협에서 해방된 세상에서 살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坡州=張準城기자 pea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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