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불교세계대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 불교인들이 23일 오전 임진각에서 ‘평화명상’을 가진 후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연두색 수건을 흔들고 있다./연합

6·25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정전(停戰) 체제는 과연 역사적 역할을 다했는가. 정전 체제를 변화시킨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정전 협정 조인 50주년(27일)을 맞아 학계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50년 동안이나 지속돼 온 정전체제의 종식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그 전제조건과 시기, 방법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 사이에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이다.

진보 진영은 최근 북핵(北核) 문제로 한반도의 전쟁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평화체제 구축’의 공감대를 확산하는 방향으로 연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최근 100여개 재야·학술단체는 ‘정전 50주년 한반도 평화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국제 민간법정’(25일 백범기념관) ‘한반도 평화포럼’(26일 연세대) ‘한반도 평화대회’(27일 임진각) 등을 잇달아 개최한다.

이들은 또 지난 21일 여야 국회의원 38명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7월 27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여 ‘냉전과 대결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으로 삼자”고 제의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방법에 대한 진보 진영의 공식 입장은 25일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평화선언 최종문서’ 형태로 정리될 예정이다. 관련 인사들의 글을 통해 볼 때 그 내용은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전쟁 위협을 완전히 해소하고 대북 경제제재 해제 및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 사회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 방안으로는 남북한의 평화협정과 미국·북한의 불가침 조약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지난 16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정전협정이 한반도를 전시체제로 규정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통일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쟁의 잠정적인 중단을 의미하는 정전체제를 마감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자는 주장은 강한 심정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 평화대회 조직위에 상당수의 시민·종교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과 현실주의자들은 평화체제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핵(核)무기 포기 등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반도의 무력충돌이 아직도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평화는 문서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 적화(赤化)라는 북한의 기본 입장이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반도를 관리하는 유일한 국제협약인 정전협정을 폐기하는 데 따른 문제점도 지적한다.

김영호(金暎浩)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지금 한반도의 평화는 정전협정 체제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며 “불안정한 평화를 더 나은 평화로 발전시키려면 우선 군사정전위 등 상당 부분 무력화된 정전체제를 정상화시키고 이를 평화체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또 북한의 민주화·인권 보장 등 체제 개선 노력 없이 평화협정만 강조할 때 북한 정권 보장과 한미(韓美) 동맹 약화를 노리는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를 빚는다는 우려도 많다. 북한은 60년대 이후 줄곧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미국과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해 왔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교수는 “남북한이든 미국과 북한이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미(韓美)방위조약 개정 요구 등이 뒤이어 제기될 것”이라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을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든 후 남북한, 미국, 중국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쟁점은 ‘평화체제로의 이행’과 ‘북한의 정상국가화’ 중 어느 것이 선행돼야 하는가로 모아진다. 앞으로 이 선후(先後) 관계를 놓고 국민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양 진영의 논쟁과 세력 대결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李先敏기자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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