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합의문에 들어있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최근 정치권의 쟁점이 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야 총재회담에서 “연방제란 외교군사권을 중앙정부에 일임하는 것인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그것이 아니므로 북이 연방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이틀 후 “어떤 형태의 연방제 논의든 그것은 자유민주체제를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는 비록 낮은 단계의 것이라도 ‘연방제’는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이 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그것이 북한의 변형된 대남전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지역정부의 기능을 대폭 인정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이 말하지만, 그 양자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연합제는 남과 북 두 개의 국가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연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면서 잠정적으로 두 개의 지역정부 기능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주년 기념 평양시 당보고회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지난 91년 신년사에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방도’라며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의 정부가 각각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통일기구가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은 이날 보고회에서 연방창립에 저촉되는 모든 정치적·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통일투쟁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연방제 달성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했다.

김일성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기한 것은 남북 대치상황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 실현이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인식에서 남한을 끌어들이기 위한 우회전략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북과 남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제도, 두 개의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어느 일방도 자기의 것을 양보하지 않는 조건에서 하나의 제도에 의한 통일은 비현실적인 것’ ‘그러나 사상과 제도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이라는 두 가지 대립적으로 보이는 명제를 타협한 것이 다름아닌 ‘낮은 단계’ 작전일 뿐, 궁극적 목표는 후자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연방제를 포기한 것처럼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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