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53주년을 맞는다. 아무리 처절한 역사일지라도 세월에 닳고 바람에 깎이면서 끝내는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다고 하지만 6·25 전쟁만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돼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막연한 ‘평화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민족 대결’이니 ‘냉전적 사고’라고 몰아붙이는 풍조까지 만연하고 있다.

정확한 상황 인식도 없이 무조건 평화만을 외친다고 해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53년 전의 전쟁도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회 풍조 속에 초등학생의 10% 이상이 “6·25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알고 있다는 한 현직 교사의 조사 결과는 우리가 자라는 세대에게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는 데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에게 역사는 비극의 반복이라는 벌(罰)을 내리는 것이다.

6·25에 대한 인식과 교훈이 이처럼 퇴화해 가는 것이 자연적인 풍화(風化)현상 탓인지도 의문이다. 한때 전쟁발발 책임이 미국과 남한에도 있다는 이른바 ‘수정주의’가 풍미하다가 역사적 실증 자료에 의해 빛을 잃기는 했지만, 당시 이를 앞장서 주장했던 사람들의 ‘고해성사’는 지금도 들을 수가 없다.

북한에 대한 인식을 현실에 맞게 바꿔 나가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전쟁의 원한(怨恨)만으로 북한을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민족 화해라는 이름으로 북한 정권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할 비판마저 금기시하거나 이른바 ‘내재적 접근’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북한식으로 바라보는 관점만 고집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해원(解怨)과 화해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남북관계를 다루어 나가는 것이 6·25의 교훈을 오늘에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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