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 간에 정치·경제·국방 등 분야별 협력방안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계가 남북 교류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연극협회가 ‘남북 공연예술 교류의 실천적 방안’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22일 여는 것을 비롯해 10월에는 광화문포럼이 ‘남북 문화예술 교류를 생각한다’는 세미나를 갖는다. 이밖에도 장르별 단체별은 물론 업계의 개별 추진건도 적지 않아 자못 활기를 띠는 양상이다.

독일은 문화→경제→정치교류의 순으로 통합을 이뤘다. 이에 비해 우리는 경제와 정치가 앞서고 문화는 뒤진 만큼 이 시점에서 교류방안 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후죽순 격으로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교류에 나서다보면 지난번 남북합동음악회가 무산된 것 같은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남북 간 문화예술 교류에도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는 수 차례 강조했듯이 상호교류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북한주도의 일방통행식은 진정한 교류라고 보기가 어렵다. 둘째는 서두르지 말고 점진적으로 물꼬를 터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남보다 먼저 계획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급증이나 한 건 위주의 대형이벤트를 추진하려는 과욕이 화근(화근)이 된 예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는 교류의 순서를 정해 완급을 조정하는 유연성이다. 남·북한의 문화예술은 체제가 다른 만큼이나 이념이나 방법론이 다르다. 따라서 작품부터 교류하다 보면 서로의 이질감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초기에는 예술가나 학자 등의 인적(인적)교류를 추진하고, 분위기가 조성되면 합동연수나 공동창작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면역성을 기른 후 작품교류는 신중하게 검토해도 늦지 않다.

이 같은 방법론 이전에 남과 북의 문화예술인들이 서로에 대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다. 문화교류의 목적이 서로 다른 체제에서 골이 깊어진 이질감을 해소하고 정서통합에 있는 만큼 인식의 변화나 이해가 없는 교류는 공허할 뿐이다. 과거처럼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거나 상대를 설득시키는 문화교류는 배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남북 문화교류 논의를 보면 북한의 문화예술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자는 주장이 적지 않다. 북한을 다녀온 일부 인사들은 북한예술의 장점을 인상기 식으로 열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예술은 아직 보편성을 띤 순수작품으로 보기 이르다. 이해와 포용은 필요하지만 이 역시 한쪽만의 변화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따라서 중구난방식의 문화교류 논의는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도 없지 않은 만큼 차제에 이에 따른 다각적인 문제들을 짚어주고 정리해 주는 위원회나 자문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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