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사항 가운데 평가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문점 연락사무소 복원으로 지난 96년부터 중단되었던 남북간 상시 접촉창구가 재가동하게 되었으며 경의선 연결 합의로 국내기업이 북한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관급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하고 오는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평양에서 2차 장관급회담을 열기로 한 것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한반도 평화와 긴장완화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란 점이다. 정부는 회담 전에 남북 군사직통전화 설치, 군사위원회 가동, 이중과세 방지협정, 투자보장 협정 등 긴장완화와 경협의 제도적 틀을 구축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이번 합의에는 그러한 내용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오히려“개별기업간의 경제교류가 잘 이뤄지고 있는 데 제도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별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며 경협의 제도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고 한다.
이번 합의는 또 본질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8·15화해주간 설정과 함께 조총련 고향방문을 추진하기로 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8·15행사는 특정한 이념적 경사(경사)를 드러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대부분이 남한출신인 조총련교포들의 고향방문은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이산가족 문제가 ‘1회성 행사’이외에 딱히 예정된 것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파격적이다. 거기다 오는 9월엔 북한으로 가기를 원하는 비전향 장기수를 모두 보내줄 예정이다.
우리는 굳이 대북관계에서 1대1의 물리적 주고받기를 고집할 생각은 없다. 또 정부 당국자들은 앞으로의 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하나 하나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자칫하면 북한에 대중선동의 ‘판’만 벌여주고 실질적인 공존체제 구축에는 진척이 없는 회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