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그동안 반대여론 등에 밀려 입법화가 유보되어 온 유사(有事)관련 법제들이 북한의 핵위기 속에서 빠르면 이번 주 국회 처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여당이 북한 핵위기라는 안보상 `호재'에 편승해 유사법제 관련 3개법안의 신속처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대해, 제1야당인 민주당이 관련 법안의 보완을 조건으로 합의처리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집권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정조회장 대리는 12일 공개적으로 ▲13일 민주당과 정치적 타결 ▲14일 중의원 특별위원회 통과 ▲15일 중의원 본회의 통과라는 법안처리 일정까지 밝히고 나섰다.

유사법제란 일본이 외국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대비해 자위대의 미군 후방지원을 위한 민간시설물 이용 등을 규정, 야당과 시민단체들로부터 `전시대비 동원법'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법안 처리를 둘러싼 막바지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이즈미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까지는 유사법제를 연구과제로 검토했을 뿐 법제화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발생한 미국의 동시다발테러를 계기로 유사법제 추진작업에 급속히 탄력이 붙기 시작했으며, 결국 지난 해 봄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후 처음으로 유사법제의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에 이르렀다.

자민당이 중심이 되어 마련한 정부.여당안은 ▲무력공격 사태의 기본이념 및 총리권한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무력공격사태대처법안' ▲자위대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자위대법 개정안' ▲안전보장회의 기능강화 등을 시도한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이다.

여권은 작년 봄 정기국회와 가을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들 처리에 주력했으나, 번번이 경제 및 개혁관련 법안처리를 위해 유사법제 법안의 통과는 단념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민당내 `국방족(族)' 의원들 사이에서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북한의 위기가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이번 국회를 놓치면 유사법안의 제정은 당분간 물건너간다"며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자신들의 대안을 마련해 여당측과 법안절충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다.

민주당은 ▲유사시 기본적 인권보호 법제 마련 ▲국민보호 법제마련시까지 무력공격사태대처법안 시행 연기 ▲위기관리청 설치 ▲국회 의결에 의한 정부 유사시 대응 종료 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민주당은 "유사 관련 법안들이 정부의 권한만 확대시키고, 국민의 재산과 자유는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며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유사관련 법제 심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아무런 법안도 없을 경우에는 오히려 과거(태평양전쟁 당시 등)와 같이 정부 마음대로 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일본의 전전(戰前) 세대들은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전쟁에 동원됐던 비참한 과거를 되뇌이며, 이번 유사관련 법제의 입법화에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도쿄=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