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이후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보이고 있는 언동들은 성급하다 못해 경솔하다. 일부 정치인은 벌써부터 “주적(주적)개념을 바꿔야 한다”느니 “헌법의 영토조항도 개정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주적개념에 대한 논의는 노동당 규약에 명시된 대남 적화노선 포기, 대남 군사전략 수정 등 북한의 상응한 조치가 먼저 있은 다음에, 그리고 이에 따라 상호간 신뢰가 구축되고 군비축소 등 가시적인 조치가 이뤄진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도 국회 국방위에서 여당 일부 의원은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해 놓고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은 ‘적과의 동침’을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이 대남 비방방송을 중단하고 노동당 규약을 개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만큼 국방의 기본개념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국방당국에 주적개념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성태 국방장관이 “북한이 군사적으로 현존하는 위협으로 존재하는 한 주적개념 변경여부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 다행이긴 하지만, 이러한 성급한 주장들이 몰고 올 파장은 만만찮다. 당장 휴전선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장병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들의 의식에 심각한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전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 갈등을 부추길 소지마저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정상회담 후속조치에 따라 남북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올 때는 헌법 3조(영토 조항)를 재고할 시기가 올 수 있다”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전체를 우리 영토로 규정한 영토 조항은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개정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남북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헌법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언동이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권 움직임은 정상회담 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들뜸과 혼선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화해정책의 착실한 진척에 오히려 부정적인 역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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