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집에서 시체 3구가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 정착 문제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현재 피의자 윤씨가 피해자 박모(41.여)씨와 치정 관계로 인한 다툼 끝에 3명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윤씨를 추적 중이다.

하지만 사건의 배경에는 남성 탈북자들의 구직난과 배우자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남성 탈북자 구직난 =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윤씨는 지난 96년 입국 후 대부분 무직으로 전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중학교 졸업 후 운전기사로 일한 경력이 전부였던 윤씨는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한 채 통일부에서 탈북자 창업자금을 대출받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실패한 뒤 친척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일했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이어 99년부터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에 입국시키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을 하다 얼마 못 가서 2000년 6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옥살이를 한 뒤 지난해 6월 귀국했다.

문제는 윤씨 같은 남성 탈북자들의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탈북자들은 대개 남쪽에서 사무직 직장을 얻거나 사업하기를 원하지만 체제가 전혀 다른 한국에서 막상 생산직 일자리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온 여성 탈북자들은 식당이나 가정집 파출부 등 일자리를 비교적 쉽게 구하지만 남성들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정부에서 받은 정착지원금을 주식 투자로 날려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정부가 탈북자들의 구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당사자인 탈북자들의 자세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탈북자 가운데는 월급이 100만 원도 안되는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생산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탈북자들 스스로 토로하고 있다.

◇배우자 선택 문제 = 북한에서 결혼을 했던 피의자 윤씨는 혼자 탈북한 뒤 남쪽에서는 배우자를 구하지 못한 채 경찰관을 사칭해 박씨에게 접근, 동거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박씨는 지난달 11일 윤씨가 자신을 폭행한다고 경찰에 고소장을 내기도 했다. 윤씨를 잘 아는 다른 탈북자는 "윤씨가 입국 직후에도 다른 여자와 동거했는데 그때도 여자를 많이 때렸다"고 말했다.

무난하게 정착한 탈북자들은 성공 요인으로 배우자 선택을 꼽고 있다. 남성 권위주의가 극심한 북한 사회에 익숙한 탈북 남성들이 한국에 온 뒤 북한에서처럼 맞벌이를 하면서도 고분고분한 여성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

탈북과 재탈북으로 유명한 유태준씨가 2001년 북한에 다시 들어갔다 잡힌 것도 그곳에 남아 있는 아내를 데려오려다 여의치 않아서다.

이밖에도 배우자 문제 때문에 좌절을 겪는 탈북자들이 부지기수다. 북한 출신이라고 결혼에 반대하는 것은 다반사고 최근에는 탈북 여성들조차도 탈북 남편이나 애인의 권위주의에 질려 이혼하거나 별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씨를 잘 안다는 한 탈북자는 "돈 문제 등으로 소문이 좋지 않아 가까이 지내는 탈북자가 별로 없었다"며 "직장도 없이 불안한 상태에서 한 여성에게 집착하다 일을 저지른 것같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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