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새 정부 출범 직전 북한측과 비밀접촉을 가졌던 사실이 드러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천명한 대북정책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대내외적 투명성 높이기’에 대한 정부의 실천 의지에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한다.

물론 남북 간에 불가피한 비밀접촉이 있을 수 있고, 투명성이 반드시 모든 접촉의 즉시 공개를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접촉의 시기와 방법, 그리고 당위성에서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국민 참여를 확대하고 초당적 협력을 얻겠다”는 새 정부의 다짐을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라종일 안보보좌관이 내정 상태에서 서둘러 북한측과 비밀리에 접촉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핵문제 해결을 위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대북 비밀송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인지를 지금으로선 단정지어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이유이건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북한과의 고위급 비밀접촉부터 서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한국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과 행동을 석연치 않아 해온 우방국가들의 의혹을 살 뿐 아니라 결국은 공조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 비밀접촉은 당장은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더 큰 문제를 가져오고 남북관계를 왜곡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북한 조평통이 5일 대북 비밀송금 특검제에 대해 야당을 협박하고 남북관계를 동결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나선 데에도 그 동안의 은밀하고 불투명한 남북관계가 이 같은 북의 무례와 오만을 키워온 측면이 크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비밀접촉의 경위와 내용을 공개하고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전환함으로써 북한당국의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바꾸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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