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평양 중국대사관 전격방문 파장이 계속 되고 있다. 당사국인 중국은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보면서도 북한의 진의(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우리 통일부와 국정원 등 관계부처도 그 의도에 신경을 세우고 있으나 아직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체적인 관측은 그의 이번 ‘돌출행동’이 최근 북한이 벌이고 있는 대외적인 실용주의노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작년부터 대외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작년 6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국가수반’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래 북한은 실용외교에 박차를 가해 이탈리아와 수교(수교)에 합의했다. 필리핀과는 수교에 사실상 합의한 상태다. 프랑스 등 EU 국가는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접촉도 활발하다. 미·북 고위급회담도 곧 열릴 예정이다.

북한은 특히 김일성 사망후 소원해진 중국과의 관계복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작년 김영남의 중국방문에 이어 외무상 백남순이 3월 중에 중국을 다시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이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전격 방문해 만찬을 하며 이례적으로 4시간 가까이 체재한 것은 중국에 대한 자신의 각별한 관심을 표시함과 동시에 미·일과의 교섭에 어떤 신호를 보내려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호의적이고, 지원을 해주는 나라에 대해서는 김정일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측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김영남 등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던 대외문제를 김정일이 직접 챙기고, 대외정책 추진방향도 종전의 교조적 입장에서 실용주의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분석이 가능하다. 외교관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주체’를 기본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최고 통치자가 자국내 외국대사관을 찾아가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그의 이번 태도를 중국방문을 대신해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북한내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연내 중국방문이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초청을 거절할 수 없어 중국대사관을 이례적으로 방문하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김정일의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브라질로 전보되는 완융샹(만영상) 중국대사에 대한 단순한 인사방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측들은 북한의 대외관계가 종전보다 유연해지고 종전의 ‘벼랑끝 외교’에만 의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남북관계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며 북한이 실용주의 노선을 취한다해서 중국식 개방정책을 따를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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