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강산여관에서 열린 이산가족 단체상봉에서 박규순씨(76)가 72년 오대양 61호를 타고 서해에서 고기잡다 납북된 아들 김태준(왼쪽)씨와 껴안고 있다.

지난 72년 고기잡이를 하던 중 납북된 김태준(49)씨가 23일 오후 3시 열린 제6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단체상봉에서 남측의 어머니 박규순(76)씨를 만났다.

태준씨는 이날 금강산여관 2층 단체 상봉장에서 아내 박화실(46)씨, 딸 김은정(14)양, 숨진 형님 의준(57)씨의 아내 백순찬(54)씨, 조카 백남(24)씨와 함께 기다리다 어머니가 나타나자 큰 절을 올리며 "어머니"라고 소리쳤다.

이어 손자 백남씨와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 손녀가 잇따라 큰 절을 올리며 울먹이자 박씨는 이들을 껴안고 "의준아" "태준아"라고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손녀 은정씨는 "할머니, 먼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들 태준씨는 박씨를 껴안고 "어머니, 내가 죽은 줄로만 알았죠?, 나는 이날이 언젠가 꼭 오리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 말을 듣고 "나는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지금까지 너희들 보고 죽으려고 살아왔다"고 대답한 뒤 아들.손자.손녀.며느리를 끌어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박씨는 특히 손자 백남씨를 안고서 "네가 의준이 아들이가. 의준아"라고 외치는가 하면 "이 자리에 의준이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말했다.

태준씨는 숨진 형과 관련, "건강하게 잘 지내다 5년전 잠자던중 뇌출혈로 저 세상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태준씨는 또 납북자 가족의 상봉을 취재하기 위해 남북한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기자들을 밀치며 "우리 어머니가 원래 심장이 나쁘다"며 "좀 진정하자"고 외치기도 했다.

태준씨는 자신이 북측에 온 뒤 대학을 졸업하고 군(郡) 책임 간부로 일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날 박씨가 아들 태준씨 등을 만나자 탁자 주변에는 남북한 취재진과 지원요원 등 2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박씨 두 아들 의준.태준씨는 지난 72년 12월 서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2남1녀를 키우던 박씨에게 생계를 위해 오대양 61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던 두 아들이 납북된 사실은 청천벽력이었다.

두 오빠의 납북이후 장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가출해 버린 딸이 10여년전 불쑥 나타나 갓 태어난 손자를 남겨두고 다시 집을 나가 버렸다.

현재 13세인 손자를 키우며 외롭게 살아가는 박씨는 방북전 취재진에게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두 아들을 만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꼭 맞다"고 말했다.

이제는 눈도 침침하다는 박씨는 두 아들이 납북된 후 친정집의 도움으로 살다가 15년전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한달에 20여만원씩 받아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박씨는 방북 하루전인 22일 속초에서 "큰 아들이 죽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건강했는데.. 그래도 둘째라도 만난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정말 살아 생전에 다시는 못볼 줄 알았는데 둘 다 결혼해서 이번에 며느리와 손자, 손녀도 함께 온다니 좋은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손자, 손녀, 며느리에게 줄 점퍼와 청바지, 속옷 등을 한 보따리 마련해 방북길에 올랐다./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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