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엔 5억 달러나 퍼준 정부…내가족 생사확인도 못해주나"


◇납북됐다 탈출한 이재근(왼쪽)씨가 15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마을을 방문해 지난 72년 고기잡이를 하다 납북된 ‘오대양 호’ 납북자 가족들에게 이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해 주고 있다. /金容佑기자 yw-kim@chosun.com

『30여년이나 기다렸는데 죽었으면 유골이라도 돌려줘야지….』
15일 오전 경남 거제시 장목면 농소마을의 옥철순(여·72)씨 집에 모인 70대 할머니들은 서울서 내려온 두 명의 손님을 맞았다.

손님은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51) 대표와, 납북됐다 지난 2000년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한 이재근(65)씨다. 할머니들은 이들이 들어서자 억눌렀던 아픔이 북받쳐 오른 듯 눈물부터 쏟아냈다.

할머니들의 공통점은 납북자 남편 혹은 자식을 뒀다는 것이다. 지난 72년 12월 28일 서해안에서 고기잡이하다 함께 납북된 ‘오대양 61호’와 ‘오대양 62호’의 선원들이 바로 남편 또는 자식들이다. 당시 납북된 어선에는 농소 마을 주민만 14명이나 타고 있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중년의 나이였지만 이제 모두 할머니가 됐다. 30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대부분 같은 마을에서 그대로 살고 있다.

집주인 옥철순 할머니는 62호 선장 박두남(70)씨의 부인이다. 오말분(78)씨는 외아들을, 박규순(78)씨는 두 아들과 생이별했다. 유우봉(68)씨는 남편을 그리며 30여년의 모진 세월을 견뎌왔고, 김순선(76)씨는 둘째아들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려 왔다.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긴 61호 선장 유경춘(77)씨의 부인 김점선(72)씨도 먼길을 달려왔다.

최 대표 등이 이날 농소마을을 방문한 것은, 오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릴 제6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아들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오말분씨는 1주일 전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외아들 정도평씨가, 박규순씨는 납치된 두 아들 중 장남 의준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아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던 외아들의 사망소식에 오말분씨는 실신, 며칠을 일어나지 못했다. 이번에 방북단에 포함된 박규순씨는 『30여년 만에 둘째아들을 만나게 돼 기쁘지만 큰아들이 죽었다니 기가 막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 할머니는 지난 70년 4월 29일 서해에서 조업 중 납북됐다 지난 2000년 중국을 통해 극적으로 탈북한 이재근씨에게 남편과 아들의 빛바랜 사진을 보여주며 생사확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씨가 확실한 답변을 주지 못해 면구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북한 김정일에게 5억달러나 주면서 납북자 생사확인도 못하는 게 무슨 정부냐』, 『죽었으면 유골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정부는 납북자 486명의 생사확인 및 송환을 대북협상의 최우선에 둬야 하며 납북자 가족 및 귀환 납북자를 위한 특별법도 조속한 시일 내에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巨濟=姜仁範기자 ibkang@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