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대북(對北) 송금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것은 “5억달러는 정상회담과 무관하다”는 정부의 해명을 뒤집을 수도 있는 중대한 발언이다. 현대측이 정상회담 직전에 송금을 서두르면서 국가정보원의 도움까지 받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대북 송금과 관련한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진실과 거리가 먼 변명을 늘어놓거나 사실 은폐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정 회장은 변죽만 울리고 말 것이 아니라 대북사업의 진정한 목적과 동기, 이를 위해 남북한 정권과 주고 받은 거래와 흥정의 내막을 숨김없이 털어놔야 한다. 그것이 나라의 혼란을 정리하고, 현대도 사는 길이다.

현대그룹 ‘오너’들의 대북사업에 대한 집착은 이를 ‘미끼’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 그룹 경영 위기를 타개하려는 속셈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현대측은 그 동안 정체 불명의 7대 사업에 대한 온갖 장밋빛 청사진을 펼쳐보였지만 가시화된 것은 개성공단뿐이며 그나마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반면 지난 2000년 중반 이후 1년반 동안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현대그룹에 제공한 직·간접 지원 규모는 33조원에 달한다. 대북사업에 대한 대가(代價) 또는 보상을 남한 정부로부터 받아낸다는 것이 당초 의도였다면 대(大)성공으로 평가할 만하다. 물론 현대그룹 해체로 그것 역시 실패한 셈이 됐지만 정부의 ‘현대 봐주기’만큼은 유례없이 파격적이었다.

대북 비밀 송금 의혹은 현대와 남북 정권과의 거래 그리고 남북 정권 사이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흑막(黑幕)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가 밝혀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에 대한 정직한 해명과 고백이다. 국민의 이해와 용서는 그 해명과 고백 다음에야 거론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