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4일 “최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치게 돼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2000년 대북비밀송금 파문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지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이미 북한당국과 많은 접촉이 있던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으며 이것이 공개적으로 문제된 이상 정부는 모든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전력·통신·관광·개성공단 등 7개 사업권을 얻었다”면서 “정부는 그것이 평화와 국가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이 문제를 법률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국익을 위해 적절치 않다”고, 검찰 수사나 특검제 도입에 거듭 반대 입장을 밝히고 “정치권도 남북관계와 국익을 생각해 선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사실을 보고받았는지에 대해 “잠깐 들은 기억이 있다”고 시인하고, “남북관계의 이중성과 북의 폐쇄성 때문에 남북문제에선 불가피하게 비공개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회견에 배석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국정원장 재직 시인 2000년 6월 5일쯤 현대측에서 급히 환전편의 제공을 요청해왔다는 보고를 받고 관련 부서에 환전편의 제공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한 바 있다”고, 2억달러 대북송금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음을 시인했다. 그는 그러나 “그후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지 못했고 보고를 받지 못해 돈이 갔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이에 따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임 특보는 또 “현대측은 북측과 대규모 협력사업들을 독점하기 위한 대가로 5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면서 “국정원은 외환은행에서 환전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했고, 6월 9일 2억달러가 송금됐다”고 설명했다.

임 특보는 그러나 “우리 정부는 어느 누구도, 북한측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대가제공 문제를 협의한 바 없다”면서 “경협사업에 대한 대가이며, 정상회담 개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대북송금이 국정원 계좌를 이용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은 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이전인 2000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싱가포르에 가 북한측 송호경(宋浩景)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만났다”고 남북 간 비밀접촉을 시인한 뒤, 북측에서 비밀로 해줄 것을 요청해 외교관례상 수용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과 임 특보 등은 이날 대북송금의 전달경위과 국정원의 개입 과정 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 金民培기자 ba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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