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과 현대그룹의 대북(對北)사업이 한묶음의 ‘패키지 딜’로 진행됐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2000년 6월 이후 정부가 ‘현대 살리기’를 위해 제공한 각종 지원이 결국 대북송금과 연계된 ‘특혜 빅딜’이었다는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

현대가 받은 특혜는 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5월부터 시작돼 2001년말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특히 정부의 지시 아래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토지공사 등 정부산하 기관과 시중은행 등이 총동원돼 ‘전방위(全方位) 지원’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산하기관과 금융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가 직접 나서 ‘보증 각서’까지 써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 정상회담 후 현대 지원 봇물 = 작년 9월 현재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5월 이후 국책기관과 금융권이 현대 계열사에 지원한 금액은 총 33조6000억원에 이른다. 지원 대상은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집중됐다. 건설과 전자는 대북송금의 주요 루트였다.

2000년 여름은 시기적으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된 때다. 당시에는 그 원인이, 정주영 명예회장 후계를 둘러싼 아들간의 싸움, 이른바 ‘왕자의 난’ 때문에 시장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분석이었다. 채권단이 무차별적으로 대출금 회수에 나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대북송금을 위해 계열사 여유자금을 긁어모은 것이 유동성 위기를 자초한 또 다른 원인이었다. 현대그룹의 관계자는 “가장 먼저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은 주력기업인 현대건설이었고, 현대는 청와대에 직접 ‘SOS’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0년 5월26일 외환·한빛·조흥 등 채권단이 연대해 현대건설에 2500억원을 긴급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산업은행, 채권단, 토지공사,주택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이 돌아가며 특혜성 자금지원과 부채탕감에 동원됐다.(표 참조)

특혜는 2000년10~12월에 피크를 이뤘다. 2000년 10월 현대건설이 1차 부도가 났을 때 채권단은 6900억원 채무를 만기 연장해주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같은 달 현대전자도 반도체 국제가격이 급락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회사채 4조2000억원의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온 상황이었다. 이어 유화, 상선도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이렇게 해서 총체적 위기에 몰린 현대그룹을 살리기 위해 나온 것이 2000년 12월 ‘회사채 신속 인수 제도’였다.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의 80%를 산업은행이 대신 사주는 제도로 전체 부실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실제 현대계열사 지원이 전체 80%(2조3000억원)를 차지했다.

◆ 정부 고위층의 적극적인 종용 흔적 = 현대에 대한 지원이 편법이다 보니 반발을 초래했고 이를 무마하려다보니 재경부, 금감원 등이 개입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2000년12월 현대건설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내놓은 서산농장이 잘 팔리지 않자 토지공사가 나서서 3450억원을 선(先)지급, 숨통을 틔워준 것도 정부가 총대를 멘 조치였다.

2001년 6월 현대건설이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7500억원의 보증을 받아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과정에도 경제부처 고위관계자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재경부가 ‘보증이 잘못되면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고 보증 관계자에 대한 면책(免責)을 보장하는 공문까지 보내줬다”고 말했다.

이밖에 통일부가 남북협력기금에서 금강산 관광 보조금으로 현대아산에 642억원을 지원한 것도 청와대의 지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성헌 의원은 “대북문제로 현대그룹에 코가 꿰인 정부는 비상식적인 지원책만 남발하다 현대도 못 살리고,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金熙燮기자 fireman@chosun.com
/金榮眞기자 hellojin@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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