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炳茂

북한의 지속적인 핵 모험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도래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아직 위기는 오직 않았다.

국제정치적으로 위기는 적대행위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증가되고 반응시간이 짧은 가운데 중대한 목표와 가치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정책결정자들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킬 때 발생한다. 위기의 특성은 경악, 고도의 불확실성 및 충돌의 확대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북한은 핵동결 해제의 수순을 강화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까지 국제사회에 긴박감을 조성해 관련 국가들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지만 위기 상황을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명백한 이유는 핵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미국이 이러한 북한의 행동을 경악으로 인정하거나 협상이나 전쟁에 의한 해결을 결심하는 단계로 인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잇따른 북한의 각종 위협시위에도 불구하고, 고위 인사들의 발언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선 핵포기, 후 협상’이라는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엔 안보리에 북핵문제를 상정, 대북 압박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 벼랑끝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핵모험의 강도를 높이던가, 아니면 이를 중단하고 사태를 관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은 “2003년은 선군의 기치에 따라 그 어떤 강적도 우리 식으로 타격, 소멸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북한의 존엄과 자주권을 튼튼히 수호”해야 함을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선군사상의 강조는 앞으로 북한은 계산된 핵모험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는 전술의 강화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미 압박전술은 미국과 북한 간의 국력의 현저한 차이로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현재까지 핵 동결 해제의 강수를 통해 미국과 남한에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의도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 이외에는 위기조성의 두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첫째, 북한은 미국에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시간을 명시한 최후 통첩을 보내 긴박감을 조성하는 데 실패했다. 북한은 힘의 열세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할 때 북한이 통제할 수 없는 전쟁위기 국면에 스스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은 미국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핵 합의를 위반하는 행위 외에는 처벌위협을 미국에 가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미국에 대한 벼랑끝 전술은 그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만약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방사 화학실을 가동하고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재시도하면서 전시동원 체제로 전환하는 등 핵과 미사일 카드를 모두 소진하면서 미국을 압박한다고 할 때, 미국이 협상제의를 수용할 것인가?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미국 조야 강경파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다.

최근 미국 정부, 의회 및 안보전문가들 가운데 북한을 악의 화신으로 인식해 체제붕괴를 주장하거나, 북한 전략 무기의 직접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은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북한의 행동은 한반도 정세 안정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려는 중국의 중재적 역할을 제약하게 된다.

북한의 목적은 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협상에 있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북한은 현 단계에서 더 이상 핵카드를 통해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은 의혹과 위협을 만들면 미국이 보상할 것이며,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국방공업(핵, 미사일)을 선차(先次)로 하여 안전을 달성한다는 선군노선을 재검토해야 한다.

선군노선은 북한이 국제고립을 벗어나는 데 장애요인이다.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길은 현재의 대결국면에서 협상의 조건을 한 단계 낮춤으로써 미국과의 협상국면을 조성하는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의 일차적 목표를 북한이 이러한 입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미 정책 조율의 다음 목표는 대북 협상의 목표와 의제의 범위를 설정하는 일이다.

북핵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반조성과 연계되어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방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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