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李俊) 국방장관이 1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나라 안팎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은 "일부 젊은층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더라도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는 한 국방위원의 지적성 질의에 대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돼 미국이 무력을 사용할 경우'라는 가정법으로 문제의 발언을 했다.

답변 내용이 알려지자 워싱턴포스트, LA 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17일 이 장관의 발언을 '서울 전쟁 대비' 등의 제목으로 보도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또 나라안에서는 아무리 전제를 달고 한 말이라해도 북핵파문으로 한반도 정세가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국방장관으로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장관의 발언은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북한을 한국전 때와 같이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LA 타임스의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는 이 장관의 국방위 답변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혀 미국이 북핵 시설에 대해 선제 공격할 경우 한국이 전쟁으로 끌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초조감을 진정시키려 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와 국장장관이 대북 문제에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라밖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 장관의 발언은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으로 곡해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라안에서도 우려와 비판이 잇따랐다.

조지 부시 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미 행정부 수뇌부가 직접 나서 여러 차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는 상황에서 이 장관의 발언은 일선 군 지휘관 수준에서나 나올만한 '일전 불사'의 경고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내주에 서울과 평양, 금강산 등지에서 장관급회담과 적십자 실무접촉, 비무장지대 철도 도로 연결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등 핵파문에도 불구하고 남북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어 국방장관의 발언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다.

한 정당은 논평을 통해 "국방부가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요구도 못하면서 민족을 공멸로 내모는 전쟁에 대해 이처럼 쉽게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국방부 대변인실에는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냐.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내외신 문의 전화가 걸려와 해명에 바빴다.

국방부측은 "이 장관이 관련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군은 여러 가능성에 항상 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발언을 이해해달라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이 갑자기 이같은 발언을 한 게 아니라 관련 질문이 나오자 만일의 경우를 상정한 답변"이라면서 "지나친 확대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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