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대북 식량 공여국들이 식량배급의 실효성을 문제삼아 식량지원 중단 및 삭감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식량을 지원받는 국가들에 대한 통상적인 감시절차를 적용받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식량계획(WFP) 고위 관계자는 최근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이 제대로 배급되고 있는 지를 감시하기 위해 북한에 파견된 WFP 요원들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 지를 상세히 털어놨다.

익명을 요청한 이 관계자가 전한 실상에 따르면 WFP 감시요원들이 어떤 장소를 방문하고자 할 때에는 6일 전에는 북한 당국에 이를 통보해야만 한다. 다른 피공여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지원된 식량이 북한 정권에 친밀한 계층으로 빼돌려진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대목이다.

또 북한 당국은 감시요원들이 현장 방문에 나서기에 앞서 영양상태가 좋고 옷을 잘입은 주민들만 밖에 나오도록 하는데, 아예 확성기로 이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감시요원들이 자체 고용한 통역사를 대동하는 것도 금지사항이다. 따라서 식량배급 과정이나 영양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북한 주민을 인터뷰할 때는 북한 당국이 제공한 통역사를 써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감시요원으로서는 통역이 정확히 되고 있는 지를 알 도리가 없다.

감시요원들이 어떤 장소를 방문하겠다고 요청한다고 해서 다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북한 당국이 전체 206개 군 가운데 25%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앞서 WFP는 지난 1995년 대북 식량지원에 나설 당시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감안, WFP 스스로 통상적인 감시절차의 적용을 포기했었다.

더군다나 지난 1996년부터 98년 사이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심각한 기아가 닥치면서 적절한 감시가 더욱 어렵게 됐다.

북한이 식량배급 과정에 대한 감시를 제한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표시하고 나선 미국의 입장에 WFP가 공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존 파월 전 WFP 아시아 국장은 지난해 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주관한 청문회에 출석, "무작위 현장 점검을 실시할 수 없고 한국어 사용자를 WFP 직원 자격으로 북한에 파견할 수 없어 만족스럽지가 않다"고 증언했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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