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2일 관영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에 대한 대응조치로, 제네바 핵합의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치해 놓았던 북한 핵시설의 봉인과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지난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동결 해제를 발표한 이후 실행한 첫 번째 조치이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 직후 모하메드 엘바라데이(ElBaradei) IAEA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13일부터 핵시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및 봉인 해제”를 요구하면서 “만약 IAEA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었다.

중앙통신 보도는 북한 내 다섯 곳의 핵동결 시설 중 어떤 시설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했는 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IAEA는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라고 밝혔다.

중앙통신 보도는 “우리는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 발표 후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았으며, IAEA측에 중유 공급 중단에 따른 전력생산 공백을 메우기 위해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해 달라고 두 번에 걸쳐 요구했다”면서 “그러나 미국은 ‘선(先)핵포기 후(後)대화’ 주장을 계속 고집하면서 압박공세를 강화했으며, IAEA도 실무협상을 제의해 시간을 끌었다”고 주장했다. 보도는 “이런 상황에서 전력생산에 필요한 핵시설을 정상 가동하기 위해 동결된 핵시설들에 대한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작업을 즉시 개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엘바라데이 사무총장도 21일, “북한이 영변에 있는 5㎿ 원자로에서 봉인의 대부분을 뜯어내고 감시 장치들의 작동을 방해했다”며 ‘깊은 유감(deep regret)’의 뜻을 밝히고, “북한의 이번 조치는 IAEA가 안전성 지속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때까지 핵 ‘동결’을 해제하는 일방적인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는 IAEA측의 거듭된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고 말했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북한의 리재선 원자력총국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이 더 이상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는 “북한 당국은 IAEA 사찰요원들이 필요한 봉쇄·감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즉시 허용해야 하며, 이 안전장치들이 설치되기 전에 이 원자로를 가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IAEA측은 이날 북한 내에 계속 사찰 요원을 상주시키고 있으며, 상황을 면밀히 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마크 그보즈데키(Gwozdecky) IAEA 대변인은 “1994년 제네바 핵 합의 당시 북한은 IAEA측에 무기급 플루토늄 약 100g만을 공개했다”며, “새로이 사찰을 실시해야만 북한이 상당히 더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도 ‘유감’을 나타내고 즉각적인 원상복구를 북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가 이날 밝혔다.

한편 콜린 파월(Powell) 미 국무장관은 이번 사태와 관련, 22일 최성홍(崔成泓)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중국·러시아로 하여금 북한을 설득해나가자”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李哲民기자 chul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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