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 미 8군 소속 스티븐 핀랜(20) 병장은 빛바랜 흑백 사진 한장과 한국전 당시 전사 통지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 크기 사진 속 주인공은 아버지(윌리엄 핀랜)였고, 전사 통지서에는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22일 북한 일대에서 전투중 사망한 삼촌의 이름과 군번이 적혀 있었다.

이날 행사는 민간단체인 유엔한국참전국협회(회장 지갑종·지갑종)가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한국전 참전 용사 자녀들에게 감사장을 주는 자리. 핀랜 병장은 “아버지와 삼촌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해 아버지 사진과 삼촌의 전사통지서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한국전에 파견되기 전날, 할머니는 ‘한국서 네 동생이 죽었다’며 한사코 말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동생을 위해서라도 가야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지요. 아버지로부터 한국에 관해 많은 것을 듣다 보니 저도 한국을 근무지로 택하게 됐습니다. ”

이날 감사장을 받은 참전 용사의 자녀나 손자들은 대를 이어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는 장병들이다. 15년 4개월 동안 미2사단에서 복무중인 오스카 핼톤 특무상사를 포함, 100개월 이상 한국에서 장기 근무한 유엔군 49명도 함께 했다.

이들은 감사장을 받은 사실보다 한국의 민간단체가 자신들과 참전했던 아버지·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더 고무된 듯 했다. 58항공통제실에 근무하는 킴벌리 폴리(여·31)씨는 “감사장을 받는다고 했더니 텍사스에 계신 할아버지가 아주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15개월째 근무중인 마틴 피셔(33·오산 공군기지)씨는 “한국서 근무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유엔 참전국 대사들과 각국 무관, 유엔군사령부 알 스티븐 위트컴 소장, 최영희 전 국방장관, 오재경 전 문공장관, 이성호 전 해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글=정병선기자 bschung@chosun.com

/사진=채승우기자 rain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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