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核)시설의 즉각적인 재가동을 선언한 북한이 후속 조치로 핵 감시 카메라와 봉인장치의 제거를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한반도에서의 핵위기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한발짝씩 다가오고 있다. 감시 카메라가 꺼지는 순간 한반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핵 암흑지대로 변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국제사회의 단호한 핵 저지 의지를 제대로 인식해 이성적인 자세를 되찾는 것이 사태 해결의 첩경이지만 그런 기대는 무망(無望)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국면이다.

북한이 갈 데까지 가보자는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졌고, 이 무모한 핵 모험의 결과가 한반도 전체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인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 정부는 북한이 실제로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일을 막는 데 대북 가용(可用)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 시인 이후에도 현 정부가 대북 경제제재 가능성마저 일체 배제하고 오히려 경협의 속도와 폭을 더욱 강화해온 것이 사태 악화를 부추긴 원인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마치 핵사태의 되지도 않을 중재자 같은 어설픔에서 벗어나 경협을 비롯한 모든 대북관계를 핵문제와 연계시키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핵 모험을 계속할 경우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이다.

대선을 눈앞에 둔 정치권이 이번 문제를 쟁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당장의 표를 의식해 이 눈치 저 눈치 다 살피며 어정쩡하고 정치적이며 즉흥적인 처방만 내놓았다가는 그것은 우리 내부의 여론과 역량을 분산시켜 북한의 오판을 부를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북핵 위기에 대처하는 각 후보의 선거전략적인 언행이 공연히 우리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이 점을 이번 대선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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