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明燮

대학시절 정문에서 시위를 벌이다 뒷산까지 쫓기면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진 돌기둥 하나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소년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가 써넣은 듯한 이 말 한마디는 전경 군단이 쏘아대던 페퍼포그보다 더 우리의 눈시울을 붉혔다.

그 ‘소년’이 이른바 386이 되고 486이 되었으며, 진보의 중견도 되었다. 그리고 그 세월과 함께 내일에 대한 소년의 꿈도 이루어져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던 외국 언론의 오만도 우스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진보가 과연 미래와 같은 방향인가에 대한 의문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억압받던 노동운동의 대명사였던 어느 대기업의 노조가 정작 자신들이 고용한 식당 아줌마들의 권리는 묵살해 버릴 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중국땅을 ‘짐승처럼’ 방황하는 탈북민(탈북자가 아니라)들이 민주와 민족의 장애물처럼 취급될 때, “파쇼에 맞서기 위해서는 파쇼적 수단이 불가피하다”던 80년대의 논리가 사회적 소수자 위에 군림하는 것을 볼 때, 나는 방향성을 잃은 진보, 더 이상 미래를 선도하지 못하는 진보의 모습을 본다.

본디 진보라는 것은 어떤 통일된 내일을 설정하고 그 내일을 위한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을 중시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내일에 대한 통일된 거대 담론이 사라진 오늘날 서로가 꿈꾸는 내일의 의미는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일정에 대한 합의도 없이 함께 가자는 어깨동무의 요구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참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우리 세대의 분노는 여전히 진보의 높은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하지만, 그 높은 목소리가 과연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약속해주는지는 의심스럽다. 높은 목소리에 솟구치는 뜨거운 피는 있지만, 정작 그것을 실어 나를 혈관은 곳곳이 막혀 있거나 새어나올 것만 같다. “저기 적이 있다고 소리치는 놈, 그 놈이 바로 적”이라고 노래했던 브레히트의 시(詩)로부터 진보진영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미래가 없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면서 불안감에 쫓긴 발걸음을 내딛는 포퓰리즘일지 모른다. 일부 기득권자들의 불편만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을 맡길 수 없듯이 미래의 처방도 없이 대중의 불안에 편승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래가 없는 진보에 실망한 사람들은 오랜 국정경험을 자랑하는 집권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렇지만 종친회, 동문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정치철새들까지 싹쓸이해서 확고한 승세를 굳히겠다는 세몰이는 있어도, 정작 진보의 미숙함을 대신하겠다는 보수의 성숙한 미래상은 보이지 않는다.

간혹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사회진출 연령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3-4세 정도가 많다는 문제 제기가 나와도, 더 많은 어두운 그림자들을 어떻게 걷어낼지에 대한 청사진은 희미하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 자신의 일기를 다시 읽고, 가족사를 되돌아보고, 향촌사를 생각해 보고, 우리 역사를 세계사와 함께 다시 읽어볼 일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역사읽기에 앞서 역사를 무기로 삼기에 급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억(Memory)은 없고 기념(Memorial)만이 무성하다. 같은 ‘진영’에서조차 역사에 대한 공유가 없는데, 어떻게 국민을 통합하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지금 미래는 보다 더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들을 초대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더 넓은 곳으로 우리 아이들을 불러내고 있다. 미래를 향해 이끌지(lead) 못할 바에야 떠나는(leave) 것이 또한 미덕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소년의 꿈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진보든 보수든 미래의 반대편에는 수구가 있다.
/한신대교수ㆍ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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