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로 북 경수로 건설사업의 전망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사업 관련자들이 19일 강원도 속초항을 떠나는 경수로 인력수송선에 승선하고 있다. /束草=연합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의 18일(현지시각) 뉴욕 발언은 우리 정부의 각료가 공개적으로 북한의 체제변화를 희망하고 북한 핵문제와 관련, 전에 없이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 “북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 모색해야”

정 장관의 “북한이 우리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을 모색…” 발언은 테러 극복과 관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이 평화와 번영 뒷받침’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언급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긴 하지만 드문 일이다.

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기로 명시한 이후, 통일 때까지 ‘2체제 2정부’로 가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었다.

물론 정부는 내심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북한이 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꼈다. 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던 홍순영(洪淳瑛) 장관만이 재임시절 북한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화토록 하는 게 대북정책의 목표라고 말했었다.

홍 장관은 북한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으며, 6개월 만에 물러났다. 다른 당국자들도 “북한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은 해도, ‘시장경제로 가야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일까?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미국 사람들을 상대로 대북정책의 이해를 돕도록 하기 위해선 그런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 사용한 것이지 북한 체제변화를 촉구한 것은 아니다”고 진화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 당국자들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는 통일부 장관이 이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북이 또다시 핵카드를 꺼내든 상황에서 ‘이제 북한에도 할 말은 한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사찰 받아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정 장관의 발언은 상당히 구체적이며 단호하다. 북한은 다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가 열리는 12월 11일 전까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폐기를 선언하고, 사찰을 받는 등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게 요지이다.

정 장관이 국가안보조정회의 상임위원장이란 점에서 그의 발언은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정부는 그동안 북한 핵 파문 이후 말로는 ‘북한 핵개발 용납할 수 없다’고 했으나 다분히 유화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정 장관도 그동안 “당장 경제제재까지 필요 없다” “대화로 풀어야 한다” “대북지원 중유공급은 1월까지 지속돼야 한다”는 등으로 말했었다. 따라서 정 장관의 18일 발언은 우리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측 입장과 똑같이 단호해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KEDO가 12월부터 중유공급 중단과 경수로 일정 재검토 등 제재를 예고한 직후 부시 행정부가 “군사공격을 않겠으며, 북한과 다른 미래를 갖기를 희망한다”(부시 대통령)는 등 북한이 원하는 것들을 구두로 약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 김인구 기자 ginko@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