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Bush)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972년 대선 때 리처드 닉슨(Nixon) 대통령이 민주당 선거사무실 도청을 지시했다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특종 보도해 결국 1974년 닉슨의 사임에까지 이르게 했던 워싱턴포스트의 편집부국장 밥 우드워드(Woodward·59)가 19일 펴내는 새 책 ‘전쟁 중인 부시(Bush at War)’에서 작년 9·11 이후 대(對) 테러전을 이끌어온 부시 행정부의 막후 비화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우드워드는 4시간에 걸친 부시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등 국제문제에 대한 부시의 솔직한 견해를 소개했다. 또한 테러전에 관여했던 인사 100여명을 인터뷰해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 군사 공격을 둘러싸고 부시 대통령 참모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갈등도 치밀하게 재구성해 보여줬다.

다음은 워싱턴포스트가 16일과 17일 발췌, 공개한 이 책의 주요 내용 가운데 일부.

◆부시, “나는 김정일을 혐오한다”

부시는 우드워드에게 일방적 선제 공격을 통한 국제질서 재편에 관한 야망을 설명하면서 이라크에 이어 북한과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을 지목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 방법을 논의할 때면 부시는 소리를 높이고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김정일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부시는 “나는 김정일을 혐오한다(I loathe Kim Jong il)”고 했고,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이 자(this guy)에게 본능적인 반발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족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고문하는 데 이용되는 거대한 수용소에 대한 첩보도 봤다”고 말했다.

부시는 “김정일을 전복시키려면 재정적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에 너무 빨리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들 한다”고 남들의 견해를 인용하듯 말했지만,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현 상태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파월과 부시의 담판

부시 집권 초기에 콜린 파월(Powell) 국무장관은 부시 대통령과의 인간적 관계를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부시는 자신의 ‘전시(戰時)내각’ 내에서 소위 A팀이랄 수 있는 딕 체니(Cheney)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Rumsfeld) 국방장관에게 귀를 기울였다. 파월은 대안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B팀을 자처했다.
그러나 체니·럼즈펠드와 갈등을 빚으며 점차 고립된 파월은 콘돌리자 라이스(Rice)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대통령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파월은 지난 8월 5일, 부시 대통령과 저녁식사를 하며 국제사회의 지원 없는 이라크 군사 공격은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자리는 부시가 유엔의 이라크 결의를 추구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체니는 유엔 결의 추구에 계속 문제를 제기했으나 부시는 파월의 손을 들어주었다.

◆라이스, 막후의 중재자

부시의 전시내각은 분열돼 있었다. 체니 부통령은 파월을 신랄하게 공격했고, 파월과 럼즈펠드는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대해 불꽃 튀기는 대립을 계속했다.

리처드 마이어스(Myers) 합참의장은 럼즈펠드를 건너뛰어 파월이나 리처드 아미티지(Armitage) 국무부 부장관에게 군사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전쟁 초기에 조지 테닛(Tenet)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자 럼즈펠드는 “우리는 CIA가 만든 전략을 수행만 하라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이스 보좌관은 막후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부시 대통령의 좌절감을 흡수해냈다.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는 매우 철저한 사람이며, 나를 계속 도와줬다”고 평했다.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현금 7000만달러 뿌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CIA가 반군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뿌린 7000만달러의 현금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흩어진 CIA 팀 리더들은 서류 가방 한 개에 300만 달러의 현찰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이 돈을 반군들에게 건넸다.

9·11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쟁을 결정하기까지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회의론(懷疑論)이 들끓었다. 탈레반 정권 축출을 위해 반(反)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과 연합한다는 전략에 대해서는 부시 대통령 자신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전쟁 개시 2주 전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모들에게 이 전략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하라고 요구했다. 참모들은 모두 그의 계획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워싱턴=姜仁仙특파원 in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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