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의 15일 북한 관련 성명은 미국의 북핵문제 대책을 종합 정리한 다목적(多目的) 카드이다.

성명에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에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대통령 성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재확인했다. 이는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 조건으로 ‘불가침 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북한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 동맹의 근본적 해체를 요구하는 ‘미·북 불가침 협정’에 응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체제 안전에 대한 우려는 이런 식으로 해소해 주겠다는 게 미국의 태도다.

북한은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구속력 있는 형태의 약속을 바라는 북한은 ‘이라크 공격을 위한 시간 벌기용’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성명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한·미 양국은 북한의 긍정적인 조치를 기대하고 있다.

이달 초 방북,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등을 만났던 돈 오버도퍼(Oberdorfer) 교수는 지난주 북한의 내심과 관련, “협정이 아니더라도 성명이 북한이 체면을 세워줄 수 있다”고 말했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국이 추진하려다 중단한 ‘대담한 (대북) 접근’의 재개를 통해 북한이 혜택을 볼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를 촉구했다. 그는 대담한 접근과 관련, “미국은 북한주민의 생활을 상당히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조치들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미국은 북한과 (과거와는) 다른 관계를 희망한다” “미국은 북한 주민과 우호를 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시의 이 같은 성명은 결국, 12월부터 중유(重油) 중단과 경수로 건설 중단 검토를 경고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전날 강력한 성명에 대해 북한이 ‘무모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차단키 위한 조치인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재개나, 우라늄 원자로에서 사용후 봉인해 둔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 작업을 위해 이를 개봉하는 등의 사태를 특히 우려하고 있다.

이번 성명은 또 북한의 반발 근거를 없애면서, 미국이 이라크와는 달리 북핵 문제는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강조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하지만 KEDO의 성명을 환영하면서, “북한의 국제협정들에 대한 명백한 위반은 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朱庸中특파원 midway@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