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 국제부 차장대우 hbjee@chosun.com

“시샤커우(西霞口)는 산둥(山東)반도 맨 동쪽 룽청(榮成)시의 어촌 마을이다. 10년 전까지 만해도 찢어지게 가난하던 이 마을은 지금 1인당 소득 60만위안(元·약 9000만원)의 부촌(富村)이 되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30여개 선박회사는 5000t급 이하의 배를 건조하고, 수산과기(水産科技)회사는 전복과 해삼을 한국·일본에 수출해 높은 수익을 올린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무료로 병을 치료하는 이 마을을 ‘촌구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8일 개막되는 16차 당대회를 앞두고 최근 ‘특집’ 기사의 하나로 보도한 내용이다.
인민일보 인터넷 사이트(www.people.com.cn)는 3층 양옥 건물이 즐비한 이 마을 전경도 보여준다.

관영 신화(新華)통신도 마찬가지다. 1일자 특집기사는 1997년 홍콩 반환부터 2년 뒤의 마카오 반환, 2001년의 베이징(北京) 올림픽 유치, 상하이(上海) APEC(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회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등 감격적 순간들을 리바이벌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이 지난 10여년간의 발전상을 부각시키는 것은 16차 당대회를 국민적 축제 분위기로 끌고 가려는 것이고, 거기엔 크게 두가지 목적이 있어 보인다.

하나는 ‘원만한 세대교체’다. 장쩌민(江澤民·76) 리펑(李鵬·74) 주룽지(朱鎔基·74) 등 이른바 ‘혁명 3세대’ 지도부가 퇴진하고 후진타오(胡錦濤·60) 쩡칭훙(曾慶紅·63) 원자바오(溫家寶·60) 등 4세대가 전면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군부를 장악한 장 주석이 수년간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도 과도기가 될 공산이 크다. 원만한 세대교체는 구세대가 국민들의 박수 속에 물러나고 후임자가 전임자의 업적을 인정·승계할 때 가능해지는데, 관영 매체들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다.

또 하나는 정치개혁의 기초를 닦는 일이다. 이번 대회는 장 주석의 ‘3개 대표(代表)’ 이론을 당장(黨章·당헌)에 등재하려 한다.

소련의 몰락에 충격받아 장 주석의 브레인들이 만들어낸 ‘3개 대표’ 이론은 ‘공산당은 선진(先進)생산력과 선진문화, 광범위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등재되면 장 주석은 당 이론의 대부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역사에 남게 된다.

이 이론의 핵심은 당의 계급적 기초를 확대·전환하는 데 있다. 당 관계자들은 공산당이 노동자·농민만을 대변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우며, 기업가 등 중산층을 끌어들여야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한 공산당 간부는 “당 대회가 끝나면 기업가의 입당이 본격화되고, 이들이 1억 중산층의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우파 숙청의 역사를 가진 중국 공산당에서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향후 이 당을 계속 ‘공산당’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만 중국이 곧 사회주의와 결별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로 갈 것으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다. 공산당 당장(黨章)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이론, 덩샤오핑(鄧小平) 사상이 건재하고, 일당 독재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70대가 통치하던 중국은 60세 전후의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인재들이 이끄는 ‘젊은 중국’으로 바뀐다. 중앙이 젊어지면 지방과 각 조직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친다.

1921년 창당한 공산당은 1978년 개혁·개방으로 전환하고 2002년엔 ‘중산층도 위하는 정당’으로 변신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려 한다. 이런 일들이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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