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켈리(Kelly)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10월 초 방북(訪北)을 앞두고, 국무부측은 김정일(金正日)에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과 켈리의 연회 주최 등 유화적 접근을 계획했지만,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북한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최우선 의제로 밀어붙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 부실장인 대니 기팅스(Gittings)는 29일 ‘뇌물을 주려는 자들과의 싸움(Battling the Bribers)’이라는 제목의 워싱턴발(發) 칼럼에서 “국무부는 켈리 방북 때 김정일에게 부시 대통령의 우호적인 친서를 전달하고 켈리가 북한 지도부를 위한 연회를 개최하는 것 등을 계획했으나, 콘돌리자 라이스(Rice)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를 알고 즉각 폐기시켰다”고 밝혔다.

기팅스는 “이후 도널드 럼즈펠드(Rumsfeld) 국방장관도 참석한 한 회의에서 행정부 내 매파들은 켈리의 방북시 발언 요지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최우선 의제로 올렸다”고 주장했다.

기팅스는 또 앞서 “북한의 서해 도발(6월29일) 몇 주 뒤, 미국 정보당국은 미국이 올해 초 파키스탄에 제공한 C130 수송기가 노동 미사일을 북한에서 파키스탄으로 공수한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보당국은 이 수송기가 우라늄 농축 관련 시설을 갖춘 파키스탄의 ‘칸(Khan· 파키스탄 핵 개발의 핵심 인물)연구소’에서 출발했고, 북한은 이 수송기가 북한측에 수송한 ‘물품’의 대가로 노동(蘆洞)미사일 외에도 이 연구소 은행 계좌로 7500만 달러를 보낸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

그는 “이런 사실들은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를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으나, 국무부 동아태국의 대북 유화론자들은 끈질기게 10월 초 제임스 켈리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을 성사시켰다”고 지적하고, “대북 유화파들이 켈리 방문을 성사시키자, 매파로선 핵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기팅스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이라크 공격에 몰두하기 위해 현시점에서 북한 핵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았으며,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을 놓고 “미국 행정부 내 일각에선 이라크와 북한간 (핵무기 개발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국무부의 시도로 보는 의혹도 강하다”고 밝혔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에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핵무기 개발의 증거도 없는 이라크를 공격할 명분도 없지 않느냐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국무부가 일부러 ‘북한의 핵개발 시인’을 흘린 것 아니냐는 유추다.

기팅스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 기조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 출신의 외교관들과 대북 유화파들은 자신들의 ‘평판’이 걸려 있는 실패한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 유지하려고 ‘현실에 눈 감고’ 있어, 미국 행정부 내에선 현재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대북 정책을 놓고 격렬한 싸움이 전개 중”이라고 지적했다. 기팅스는 “미국 행정부가 후세인 축출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동안, 이들 유화파는 예전처럼 실지(失地)를 야금야금 되찾으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李哲民기자 chul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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