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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할 파렴치한 역적 매국노 우범선(禹範善)
김흥순  |  webmaster@ccnews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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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03  23: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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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할 파렴치한 역적 매국노 우범선(禹範善)

조상 대대로 무인의 맥을 이어온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을미사변(명성황후 민비 시해 사건) 때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휘하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궁궐에 침입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조선의 고영근에 의해 살해되었다. 아들 우장춘은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하다.
...
명성황후를 처참하고 치욕적으로 시해한 범인은 조선에 있던 미우라공사와 일본 깡패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 행동대원일 뿐이고, 진짜범인은 당시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총리대신으로 있던 일본정부다.

상식적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은 국가가 정부차원에서 개입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시행할 수 없는 일이다. 이웃나라 왕비를 살해하는 일은 일본 외무성의 국장급인 주한공사 정도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당시 총리대신인 이또오 히로부미가 결정하고, 외무대신출신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총지휘를 맡은 사건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군부(軍部)가 적극 개입되었고, 조선에 있던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공사는 행동대장이었다.

그 행동대의 일원 중 한 명이 조선 군인(공무원) 우범선으로 그는 명성황후 시신을 소각한 장본인이었다. 사건 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정부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 이것만 보다라도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일본정부가 주도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갑오개혁에 가담했고, 1895년 일본이 주도하여 훈련대가 창설되자 제2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895년 10월 7일 명성황후는 친일성향의 훈련대에 위협을 느끼고 해산과 무장해제를 명하였다.

1895년(고종 32) 10월 8일 훈련대 해산 다음날 우범선은 이두황(李斗璜)과 함께 휘하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함께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弑害)하는 을미사변에 가담하였다.

그는 명성황후의 시신에 석유를 부어 태우는 마지막 처리 과정에도 가담하였다. 우범선은 조선을 개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명성황후를 제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오판(誤判)하였다. 1896년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뒤 일본으로 망명, 도쿄(東京)에 거주하였다.

일본정부의 보호와 후원금을 받았고, 일본 여성 사카이(酒井 仲)와 결혼하였다. 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농학자(農學者) 우장춘(禹長春)이다. 이후 히로시마 인근 구레시(吳市)에서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거주하였다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망명해있던(그러나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고영근(高永根)·노원명에게 암살당하였다(1903.11).

일부에서는 우범선 무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우라 공사가 주도한 것이며 표면상으로는 ‘대원군과 훈련대의 쿠데타’ 형식을 취하나 그 시행은 일본인들이 야음을 틈타 결행하고 증거인멸(화장) 후 미명에 대궐에서 철수하고, 그후 우범선 소령 일당은 대궐수비를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렌 서기관의 1895년 10월10일자 국무장관 앞 보고에도 국모를 시해한 일본인들이 유해를 천으로 덮어서 앞마당에 가져왔다가(궁녀를 통한 명성황후 유해 확인) 곧 근처 숲(녹원)으로 운반해 화장하는 것을 본 궁녀의 목격담을 담고 있다.

‘큰일에 조선인을 믿을 수 없다’고 한 미우라는 일본인의 결행과 미명 철수를 강조했던 것이니, 우범선의 유해 접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한 자료
알렌 서기관의 미 국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당시 주한 외교사절의 메모와 선교사들 및 명성황후 접견인사들의 기록과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후 고종의 명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공식조사보고서(법무협판 권재형, 외교고문 C R Greathouse 공동조사)와 특히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총장을 역임한 해링턴 교수의 저서(God, Mammon and Japanese) 등과 당시 외국 신문기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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