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달 초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일행과 만난 자리에서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한 것은 갑작스런 결정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대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고위층 출신의 한 탈북인은 22일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 서명(94.10)한 이후인 96년쯤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현 외무성 제1부상)으로부터 핵개발 사실이 탄로나면 (핵무기가) 있다고 시인하고 대결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강 제1부부장은 “이 같은 입장은 김정일하고도 얘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탈북인은 전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미국과 제네바합의에 서명한 이후인 96년 여름 러시아로부터 플루토늄을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이에 따라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시설을 들여오기로 했으며, 대신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전수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탈북인은 또 당시 박송봉 당중앙위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2001년 2월 사망)으로부터 “북한이 핵문제를 조기에 매듭짓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은 (핵무기를) 하나라도 더 만들자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면서 “북한은 96년 이후 최소한 몇 개의 핵무기를 더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하면서까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경제파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라면서 “김정일이나 핵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과 타협하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 金光仁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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