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달 초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한 것은 안이한 정세판단 때문일 수도 있다는 주장 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은 북한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북이 성사되자 북미관계도 머지않아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체판단에 따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벼랑끝 전술'의 일환으로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이라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은 "북한 외교가에서는 미국의 허락없이 북일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고 있으며 따라서 북한은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도 미국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고이즈미의 방북이 없었더라면 미국이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내놓았다 하더라도 북한이 종전처럼 핵개발 사실을 부인했을 것"이라면서 "북한 당국이 그정도도 예상도 못했겠는가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은 의외로 안팎의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오판으로 인한 미숙 정책을 펼 때가 적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국가 이미지 훼손 등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한 데는 신용과 신뢰에 대한 북한 사회의 일반적인 `불감증 풍토'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용을 제일로 삼는 자본주의사회와 달리 북한에서는 형편 등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주민 개인으로부터 권력층에까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접촉 및 교류에서 약속했던 각종 사안이 북한의 일방 적인 파기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는 "그 어떤 경우에도 약속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입장이 희박한 점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이들은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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