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계획 시인 사실을 발표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 핵사찰 요구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번의 북핵 문제는 1993년의 `핵위기'가 또다시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그동안 사실상 이렇다할 북미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는 9년전 클린턴 행정부 출범 직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1993년의 경우는 북미대화 개시 전이었던 반면 이번은 중단됐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미 대통령 특사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표면화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사찰을 통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 해소를 그 전제로 하고 있다.

러시아 등 일각에서는 미국의 북한 핵개발계획 시인 사실 발표에 대해 회의적반응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은 IAEA와 함께 사찰 압력을 계속 높여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경수로 건설 지원과 중유 제공에 따라 핵개발을 중단하겠다고 한 1994년 10월제네바합의를 북한이 위반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와 1993년의 상황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북미관계 등에서 많은 차이를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북한 핵문제가 9년전의 상황으로 간다면 북한의 대응에 따라 양국간 대치국면은 불가피하며 한반도 정세도 냉각될 것은 명백하다.

제임스 켈리 특사 방북 직후인 지난 7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적대적의사를 버리지 않는다면 미국의 강경책에 대응해 선군정치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일단 강경 대응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1993년 북한은 IAEA의 사찰 결정에 대해 이를 `미국의 책동'이라고 주장하면서곧바로 전시동원령을 발동하고(3.8),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3.12)하는등 초강경 대응 태세를 견지했었다.

곧 이어 김정일 북한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 국방위원장에 추대되고(4.9) 5월29일과 30일에는 일본 노도 반도를 향해 노동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함으로써 한반도핵전쟁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북미 양국은 마침내 1단계 고위급회담을 서둘러 개최했고 '6ㆍ11 조-미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 일단 위기를 넘기고 이듬해인 1994년 제네바합의(10.21)에 도달하게 된다.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면 순조롭게 풀려나가겠지만 이번 제2차 북핵 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돼 나갈지 주목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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