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제네바합의 약속을 어기고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해 온 데 대해 다단계(多段階) 대처 방안을 모색 중이다.

◆ “대북관계 진전 중단”으로 북한 압박
부시 행정부가 16일 1차로 내놓은 카드는 ‘대북관계 진전 중단’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제거하고 핵비확산조약(NPT)을 준수하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 대북관계 진전을 위한 일차적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다.

부시 행정부는 이처럼 북한을 압박하면서도, “우리는 이번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상대로 하듯이 북한에 대해 당장 ‘으름장’을 놓지 않는 것은 한반도의 특수성, 그리고 이라크와 북한이라는 2개의 전선(戰線)을 동시에 형성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뉴욕타임스는 16일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 북한 문제를 외교 채널을 통해 다루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부시 행정부의 몇몇 고위 관리들은 “내일 당장 전쟁으로 가야 한다”고 믿고 있으나, 한 고위 관리는 ‘부시 대통령은 매우 조용하고 침착했으며 또 다른 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 보도했다.

대북 정책과 관련, 켈리 방북 이후 12일간 벌어진 부시 행정부 내부 논의에서 일단은 온건파의 목소리가 통한 셈이다.

◆ 강경 방안도 배제 못해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 포기를 끝내 수용치 않을 경우, 부시 행정부의 강경론이 표면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부시 행정부의 한 관리는 “만일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핵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확산에 관한 한 이라크보다 북한이 더 위협적인데, 거꾸로 이라크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 데 대한 논리적 일관성 결여를 지적하는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 주변에는 포진해 있다.

부시 행정부는 또 한국·일본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어긴 데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경수로 건설과 중유제공 중단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역할 공간이 없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 한·일의 대북관계 냉각 불가피
부시 행정부가 이번 사태와 관련, 16일 국무부의 존 볼튼(Bolton) 군축담당 차관과 제임스 켈리(kelly)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한·중·일에 각각 급파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위한 국제 공조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최근 북한과 활발하게 진행시켜온 각종 협상은 미국의 서슬퍼런 태도에 밀려 찬서리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 워싱턴=朱庸中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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