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15일 아침. 파리 남동쪽 교외 뱅센. 처형대에 마타하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옷을 모두 벗어 던져버리고 햇볕 아래 섰다. 선고문이 낭독됐다.

“제3군법회의의 판결에 따라 M G 젤러를 스파이 혐의로 처형한다.” 사수 12명이 마타하리를 향해 정렬했다. 사형집행인이 그녀에게 다가가 눈가리개를 씌우려 하자 그녀가 거부했다. “내게 손대지 마세요.” 41세였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차대전 중인 유럽 전역을 전전하며 숱한 남성편력과 화려한 춤솜씨를 보였던 마타하리는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의 애인 중에는 프랑스 장관, 프로이센 황태자, 네덜란드 총리, 귀족, 고급장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세 연하였던 러시아제국 제1특수연대 비행기 조종사 블라디미르 드 마슬로프가 있었다. 그녀는 체포됐을 때 자신은 전문적 스파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그녀를 암호명 ‘H21’로 지목하고 “연합군 병사 5만명을 죽일 수 있는 군사기밀을 빼냈다”고 선고했을 때, 그녀의 ‘다국적 고객’들은 제몸만 빠져나갔다.

▶이번주 원로 문인 전숙희씨가 일종의 실명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한국의 마타하리, 여간첩 김수임’을 내 화제다. ‘…1950년 6월 한강 모래밭. 쇠사슬을 벗고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은 수임은 형틀에 매였다.

자신의 소원대로 두 눈은 가리지 않은 채 넓은 모래밭 한가운데 세워졌다. 그녀의 앞에는 한강물이 푸르게 넘실거리고 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앞에는 이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헌병 다섯 명이 집총을 하고 서있다.’

▶그녀의 죄목은 국방경비법 제32조 간첩이적행위였다. 당시 권력핵심이었던 미8군사령부 헌병감 베어드 대령, 북한 초대 외무성 부상이었던 이강국과의 삼각관계는 그해 6월 일간지 사회면을 온통 도배하고 있었다.

이기붕 서울시장의 수사중단 압력도 있었고, 김수임과 교분을 나누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구명운동도 있었다 하나 결국 허사였다.

▶그녀의 대학후배로 친밀한 사이였던 전숙희씨는 소설의 끝을 이렇게 윤색해주고 있다. ‘…죄목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나이는 서른아홉 살, 6·25전쟁 불과 며칠 전, 비정한 해방공간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결국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김수임과 이강국의 생명을 건 애절한 사랑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 적군과 사랑에 빠지면 그보다 더 ‘위험한 여인(femme fatale)’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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