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군사령부는 지난 23일 ‘중대보도’를 통해 소위 서해 5개 도서에 대한 ‘통항질서’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번 ‘통항질서’ 선포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73년 이후 북한측은 유엔군측이 설정한 서해 북방한계선의 무효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작년 9월 2일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성명을 통해 새 해양경계선을 발표, 이 지역에 대한 자위권 행사를 거듭 천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통항질서’ 선포는 북방한계선 무효화라는 종래의 입장을 주지시키는 동시에 4월부터 시작되는 꽃게철을 겨냥한 사전정지작업으로, 작년 9월 총참모부 성명의 기술적 후속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측의 이번 선포는 다분히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서해 5개 도서에 대한 미군의 관할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안전운항이 가능한 2개의 해로(해로)를 지정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는 전향적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인민군 총참모부가 아닌 해군사령부에서 ‘통항질서’를 선포했다는 점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아 크게 우려되는 대목들도 있다. 우선,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한 구절밖에 없고 미군에 대한 일방통보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새 해양경계선 문제를 빌미로 서해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를 4월로 예정된 미·북 고위급회담의 주요 의제로 상정, 북한측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휴전협정의 미·북 평화협정 대체와 연동시키려는 의도로 파악될 수 있다.

북한측은 이번 선포를 계기로 부수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북방한계선 문제를 정치쟁점화해 한국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약화시키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안전해로의 일방적 선포를 통해 한국과의 무력 충돌시 그 책임을 한국측에 전가시켜 국제적 동정과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 또한 깔려 있다.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한국측은 이번 사태를 신중하고도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북방한계선 고수라는 우리의 원칙에 단 한치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와 더불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작년 6월 연평해전에서의 승리에 자만하여 이 지역에 대한 경계태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이번 사태가 4·13 총선과 맞물려 정쟁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북문제의 정쟁화는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켜 대북협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선거 주기에 따른 ‘북풍’의 고질화 현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북방한계선의 고수, 경계태세 강화, 그리고 일단 유사시 강력한 군사대응이라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쟁점화의 소지가 없다고 보아진다.

셋째, 북방한계선 문제와 서해 긴장을 미·북 고위급회담에 연결시켜 휴전협정의 미·북 평화협정 대체를 모색하려는 북한측 의도를 단호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미국과의 정책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겠다. 특히 일단 유사시에 대비, 한·미 군사협력을 통한 미군의 지원전력 동원체계에 대한 점검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평행선을 그리는 명분싸움을 중단하고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53년 휴전협정과 92년 기본합의서에 북방한계선이 남북간 해양경계선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한국을 협상주체로 인정하고, 이 지역에 있어서 공동어로, 해로안전 등 실질적 사안들에 대한 심도 있는 협의를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남북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그리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첩경이라 하겠다.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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